my 수필

무소유를 읽고

구름뜰 2009. 5. 8. 10:44

 무소유를 읽게 된 행운은 좋은 친구를 만난 덕분이었다.

18년전 나는 사회초년생으로 매주 수요일 마다 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여는 불자회에서 법문을 경청하던 초발심자 였었다. 그곳에서 알게된 心友가 무소유를 읽어 볼 것을 권했다. 스님이 쓴 책이란 것과 제목에서 느껴지는 간명함이 내 호기심을 더 한층 자극했다.

 

 스님은 책에서, 정한 시간도 없이 손님만 차면 출발하는 배를 타러 강나루에 나왔지만, 저 만치 출발해 가고 있다면 다음 배편이 내 차례인데 '너무 일찍 나왔군'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고 했다. 시간을 빼앗긴 데다 마음까지 빼앗긴다면 손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비 오는 날 정랑에서 풍겨오는 역겨운 냄새에도 내 몸 안에도 자가용 변소가 있지 않느냐, 사람의 양심 썩는 냄새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없어도 될 물건에 욕심을 내서 갖게되면 나중엔 더 좋은 물건을 가지고 싶게 되고, 결국 그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게 되니, 그렇게 마음이 얽매이게 되면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오히려 그 물건에 가짐을 당하게 되며, 주객이 전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지게 되면 내내 갖고 싶어 안달했다. 그 욕심을 제어하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며 어리석은 미련으로 씩씩대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못 가져서 고통인 줄 알았지 갖고자 하는 마음이 고통의 원인 인줄은 몰랐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픽 웃음이 난다.

 

  책에는 마하트마 간디스님의 이야기도 있다. 여행중 소지품 검사를 하는 세관원에게 한 말이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 젓 한 깡통, 허름한 도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 뿐이오."

 

 간디 어록에서 이 구절을 보고 스님은 몹시 부끄러웠다고 하셨다.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간디는 무엇인가를 갖는 다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이다.. 그는 소유를 범죄처럼 생각한다고도 했다. 간디도 법정도 아름다운 선승임에 틀림없다.  우리 같은 속물들이야 가진 것이 많으면 자랑으로 여기고 부자를 목표로 삼고 가난하면 부끄럽게 여기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언젠가 간디는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오르다가 신발 한 짝을 철로주변에 떨어트리게 되었는데 그는 얼른 다른 한짝마저 벗어서 철로위로 던졌다는 것이다. 일행이 묻자,

 "신발을 줍는 이가 한 짝만 신을 수는 없지 않소." 했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자의 삶은 아름답다. 그 분들을 책에서 접하는 것이 행운이요. 기쁨이다.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그분들의 정신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독자에게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예로서 쉽게 풀어 주셨다. 특히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의 '일체유심조"는 더욱 그렇다.

 

 사회초년생이던 내게 대인관계에서 겪게되는 갈등이나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침착하게 심사숙고 할 여유를 갖게 되었고 언행의 정립에 도움을 되어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게 도움을 받았던 셈이다. 내 마음이 여유있어 지고 숨어 있는 덕성도 찾을 수 있었다.

 무심코 지내온 내 생활이 사려 깊은 언행으로 거듭났고 자연의 귀함도 알게되고, 고통의 화근인 욕심이란 것에도 호락호락 말려들지 않는 지혜도 생겼다. 내 주변을 새롭게 보게되고 이 책을 권해준 친구에게서 묻어 나던 향기와 여유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고 있다. 입에 딱 맞는 음식처럼 읽을 수록 맛이 난다.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은 단백하고 깜끔한 맛이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나와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18년 전 그 心友가 그랬던 것처럼 무소유를 선물하거나 읽기를 권한다. 그가 만약 아직도 무소유를 읽지 않았다면...

 

  2002년에 쓴 독후감이다. 2003년 발행된 [느낌]에 수록

 소유란 물질적인 영역에 한 한것으로만 생각하고 이글을 썼었는데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소유는 정신적인 영역도 함께라고 해야 맞을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쓴지 7년이나 지난 이글을 이 아침에 다시 꺼내어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