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앞두고
"어머니, 스승의날 학교에서 학부모 일일교사 수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한시간만 내서 아이들에게 좋은 얘기좀 들려 주세요."
이런 황송할데가 있나! 작은아이의 담임선생님 전화다. 이런 요청은 처음이다.
순간 스쳐가는 우리 아들놈 얼굴.. 그 녀석 하나도 내맘대로 요리가 안 될 때가 많은데, 40명이
나 되는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무엇이 있을까. 레파토리의 부재가 느껴지면서 순간 답이 없음을 재바르게 인식하는 나!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까칠하면서도 의아해 할 녀석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왔다. 거절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지 얼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 제가요..... 제가, 어떻게...요?"
"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 생활속 이야기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 중 3이라면 몰라도.... 아니 차라리 어머니수업이면 몰라도 고3 녀석들 40명은 자신 없어요
권이 녀석 하나도 쉽지 않은 걸요.."
"권이 때문이라면 다른 반에 가서 하셔도 됩니다. 금요일까지니까 오늘중으로 한번 생각해
보시고 답 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아들놈을 무서워하는 건지, 아니면 그 또래 아이들 숫자에 대한 공포감인지..내가 어떻게라는 벽같은 것이 느껴졌다. 자신없는 건 자신 없는거다. 어떤 주제여야 할지. 아이들을 사로잡을 자신이 없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 일은 애초에 맡지 않는 편이다. 맡았다 하면 나는 내 맘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들볶는 일인줄 알기에 거절해야 했다.
선생님의 부탁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지만 그 역량이 못됨을 실감하니 다른 학부모를 알아봐 달라고 공손히 거절을 했다. 전화를 끊고도 진땀이 났다.
고 3이 되고 학습량이 많아진 아이는 예전보다 까칠해졌다.
생활패턴도 공부에만 매이다 보니 피로에 찌든 모습 일색이다. 어느 때는 똥밟은 얼굴로 나를 쳐다 볼 때도 있다. '어휴.. 저걸 그냥.' 속에서 울컥 할 때도 있지만 그 까칠함이 나와 상관 없는 경우엔 나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그것이 현명한 처신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내버려둔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고 제 풀에 난 화는 제스스로 풀어 낸다. 섣불리 잘못 건드려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내녀석들이란 담백해서 딱히 해 줄 말이 없을 때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약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쨌거나 이 나이 먹도록 아들친구들에게 한시간 이야기 하는 것도 자신이 없어서 단박에 진땀흘리며 거절한 나 자신을 돌아본다. 이럴 때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기꺼이 해 드리지요." 승낙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들 놈 운운했지만 부끄러운 일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