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매일춘추] 빈자리 | ||||||||||
작년 2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5월 초 어르신을 위한 행사에 갔다가 얼마나 울었는지. 그래도 작년 어버이날에는 아버지께라도 꽃을 드릴 수가 있었지만 12월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더 이상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부모님이 나에겐 안 계신다. 5월 이때쯤이면 곳곳에서 어르신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있고 평소에는 그냥 인사치레로 다니면서 어르신들께 눈도장을 찍고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어르신을 만나면 마치 우리 엄마, 아버지를 찾기라도 하듯 더 가까이 다가가서 이야기하며 눈을 마주친다. 누군가로부터 주말에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하며 부러움과 함께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부모님이 없는 듯 서럽기만 하다. 언제까지나 곁에서 조건 없이 지원해 주는 영원한 후원자이며 든든한 ‘빽’이 바로 부모님인 것을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얼마 전 친정아버지를 잘 아신다는 어른 한 분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친정할아버지부터 우리 집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나는 마치 어릴 적 동화 이야기라도 듣는 듯 하나도 빠짐없이 듣기 위해 귀를 쫑긋하며 열심히 들었다. 예전에는 나의 뿌리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이제 부모님을 다 잃은 뒤에야 이렇게 안간힘을 다하며 알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라도 빈 자리를 채우겠다는 내 욕심이 아닐까. 한때는 어버이날이라는 핑계로 꽃바구니와 작은 선물만 들고 가면 하루 종일 해주는 밥 얻어먹고 소파에 누워 TV도 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쉬었다 오곤 하던 친정이란 곳이 이젠 영영 내 사전에서 사라졌다. 가정의 달이라며 TV와 신문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 나들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본다. 철없는 아이처럼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끊임없는 사랑과 깊은 이해로 받아주던 부모님 자리에 어느새 내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밀려오는 쓸쓸함을 슬그머니 아이들에게 기대며 달래본다.
최윤희 전문직여성 한국연맹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