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연’ ‘오월’ 등 주옥 같은 수필을 남긴 금아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살았다. 금아는 하찮고 시시한 것에 유난히 감동했다. 길가의 꽃 한 송이에도 감탄했고, 아기의 맑은 눈을 보면 고마워했다. 아흔일곱 해 일생을 청빈하게 살았고, 세상에 감사하고 만물에 머리 조아리며 살았다. 읽는 이의 심금을 촉촉이 적시는 금아의 글은, 그 청아한 마음에서 길어 올린 결정이었다.
생전의 금아는 막내 딸 서영(63·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씨를 유독 아꼈다. 날씨가 흐리면 금아는 어린 서영씨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라고 수필에 적었을 정도였다.
성년이 된 서영씨가 미국에 유학 갔을 때 금아는 어린 서영씨에게 선물로 줬던 인형 난영이(사진)를 서영씨처럼 보살폈다. 눈을 감지 못하는 난영이에게 저녁마다 안대를 씌어줬고, 아침마다 세수를 시키고 옷을 갈아 입혔다. 서영씨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뒤에도 서재 한구석에 놓아둔 난영이를 어린 딸마냥 날마다 돌봤다. 2006년 가을 금아의 서울 반포동 집을 방문했을 때도 금아는 그렇게 난영이와 알콩달콩 살고 있었다.
2007년 5월 25일 오후 11시40분, 금아는 자신의 97 번째 생일을 20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토록 5월을 좋아했던 금아가 이승의 인연도 5월에 내려놓았다고 세상은 기록했다. 그 뒤로 금아는 세상에서 잊혀져 갔다. 아니 그렇게 잊힌 줄만 알았다. 롯데월드에 금아의 서재가 재현돼 있을 줄은 몰랐다.
롯데월드는 지난해 6월 본관 3층 민속박물관 입구에 금아의 서재를 꾸몄다. 서재에 있던 책과 책장, 의자와 책상은 물론이고 장판과 전등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거기엔 물론 난영이도 있었다. 롯데월드는 5억원을 들여 50평 규모의 전시관을 지었다. 매장 하나 들여놔도 될 공간이었지만 롯데월드는 금아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줬다. 가만히 보니, 정말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누구보다 어린아이처럼 살다 간 금아였기 때문이다.
금아가 ‘인연’에 남긴 구절을 빗대 말한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피천득과 나는 세 번 만났다. 첫 번째는 생전 그의 아파트에서, 두 번째는 그의 빈소에서, 세 번째는 롯데월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