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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가 재미있으려면 인물과 삶과 세상이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럽고 고통스러워야 한다. 어조는 심각하고 분위기는 긴장이 넘치고 마음은 숨 막히도록 답답해야 한다. “한 줌 재로도 남고 싶지 않은 순수한 저주”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놀이의 재료인 삶이 지독하면 지독할수록 놀이는 더 짜릿해지고 쾌감은 더욱 커지니까.
이 소설집에는 이성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원시적인 에너지들이 부딪치는 삶, 너무 지독해서 꿈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 있다. 단편 ‘노적가리 판타지’에는 시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해 남편이 자살했는데도 그 시아버지와 죽지 못해 사는 며느리가 있다. 화자는 술집 주인인 그녀의 사연을 듣고는 동생의 약혼녀와 불륜을 저질러 동생을 자살하게 한 자신을 떠올린다. 순간 구토를 한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노적가리 속의 꿈이었던 것.
이 소설은 현실과 꿈, 실감과 착시, 삶의 고통과 흥미진진한 옛날 이야기가 서로 한 몸처럼 섞이면서 노는 허구의 진경을 보여준다. 당신이 몹시 괴롭다면 당신의 몸속에서 괴로워하는 그 놈을 찾아보라. 찾으려 하면 괴로움의 주체는 없어지고 괴로워하는 몸부림만 있는 이 기이한 놀이. 울음으로 웃는 헛것의 코미디.
이 소설집에는 다양한 허구 실험을 하면서 즐기는 인생의 놀이, 존재의 놀이가 있다. 소설의 화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작가는 의뢰인이 요구하는 대로 인생을 창조해 주는 ‘전지전능한 모조 신’이 라고. 그래서 자신은 인터넷에서 닉네임을 GG(Ghost God)라고 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