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자두밭을 다녀 오다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반갑게, 그침없이.후두둑 후두둑,,
저 빗소리는
하늘의 메세지일까 땅의 감응일까. 서로가 충분히 소통하고 있는 소리인걸까.
오후부터 장마가 시작되고 비가 올거라는 예보를 접했는데
김천 조마면이 고향인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두따러 가자고."
묵정밭으로 묵혀둔 자두밭이 있는데 이 맘때 (장맛비가 내리기 전) 따러가면
가장 좋은 때란다. 이런 반가울데가 있나,
얼씨구나 하고 자두밭 나들이를 다녀왔다.
조마면은 김천에서 거창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비보호 좌회전 신호표시와 함께
<조마>라는 이정표가 첫 삼거리에 나오는 김천에서 제일 가까운 면소재지이다.
감천은 대덕쪽에서 조마면을 거쳐 김천시내로 흐른다.
감천은 조마면 주변들녘을 풍요로운 농경지로 만들어 온,
그 일대 농경지의 젖줄인 셈인데,
오늘 가본 감천은 가뭄으로 물길이 끊어진 곳이 많았다.
5년 전 쯤, 태풍 <루사>인가 <매미>로 감천이 범람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조마면에는 인명사고도 있었다.
마을앞 넓은 농경지는 대부분 비닐하우스 특작하는 곳인데
감천의 모래뻘이 비닐하우스를 다 휩쓸며 지반을 1-2미터 정도 높이기도 했던
그냥 침수된 농경지보다 특작 농경지라 휘어진 하우스 뼈대며 일거리도 훨씬 많았던,
산아래쪽 밀집된 가옥들도 모조리 침수피해를 본 지역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현장상황이 막막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구미시에서도 인력지원을 엄청 많이 했다.
자원봉사단체는 물론 공무원들까지 수해복구 작업에 근무시간에까지 동원되었었다.
그때도 오늘 처럼 장마철이었다.
조마면은 그 때 자원봉사를 와 본적이 있던터라 낯설지 않은 마을이다.
올해는 알맞게 비가 내려 감천물길이 끊이지 않고 내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하늘의 뜻이겠지만, 올 장마에는 장마답게 비라도 많이 왔으면 좋겠다.
자두는 칠월한달이 제철이다.
지금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토종자두는 벌써 이렇게 빨갛게 익었다.
김천은 우리나라 자두 생산량의 30프로 정도를 생산해 낼 만큼 자두와 포도의 고장이다.
이육사 선생님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노래하셨지만
내게, 내 고장 칠월이 좋은 이유는 딱 한철인 자두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연유한다.
김천이 가깝고 또 주변에 시댁이나 친청이 김천쪽인 지인들도 많다.
자두철이 되면 좋아하는 줄 알고 맛보게 해주는 이웃도 있다.
싱싱한 과일을 사서도 먹지만 공으로도 맛 볼 수 있는 계절이 칠월인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따보는 재미는 언제고 쉽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더욱 반가운 일이다. 살기좋은 고장에 사는 재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ㅎㅎ
(하얀 모시수건에 은쟁반은 아니지만,
육사 선생님마음이니 블러그를 찾는 이들은 맛보시길..)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힌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개망초꽃이다. (일명 계란 후라이 꽃, 생김새 때문에 작년부터 그렇게 애칭으로 붙인 이름이다)
자두밭 너머 멀리 묵정밭에 하얀 개망초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었다.
하얗게 들판을 메울듯이 퍼져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너무 흔한 꽃이라 꽃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법정스님도 말씀하신,
썩 이쁘진 않지만 우리네 들녘, 밭두둑이든 논두둑이든 어디에도 흔한 꽃이다.
작년에 이맘때 그림에 한 참 재미를 붙였을때,
남편이 퇴근길에 개망초를 꺽어온 적이 있다.
"이 꽃도 한 번 그려봐"
<소나기>에 소년이 소녀에게 꽃을 건네듯 한옹큼은 아니지만
그렇게 불쑥 내밀어 주던 꽃이 이 개망초였다.
쬐끔 감동먹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스케치북을 꺼내놓고 그리다가 생각보다 가지 벌어진 각도가 정형화되어 있음을 알았다!
너무 큰 각으로 벌려서 그리면 자연스럽지 않고 꽃이 늘어지는 느낌이 나고,
각을 작게 벌리면 편협해 보이며 개망초 같지 않게 스케치가 되는 걸 보고,
흔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꽃이었는데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그리다가 물려둔 꽃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들까봐 물컵에 꽂아 두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하얀 꽃잎이 맥없이 떨어지고 말았던,
살짝만 건드려도 줄줄이 꽃잎이 떨어지던 여린 꽃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냥 그대로 그자리에 두면 이른 여름부터 늦 여름까지 지겹도록 피고 지는 꽃이었는데..
들꽃은,
제 자리에 두고 보아야 가장 오래도록 꽃의 아름다움을 즐길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