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동산 설경
중부지방을 비롯 수도권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소식이 있어도 조용하더니,
어제오전 10시가 넘어 내리기 시작한 눈이 제법 많이 쌓였다.
외출준비를 했었는데 나서려다 깜짝 놀랐을 정도로 갑자기 내린 눈이었다.
이런 풍경은 1년에 한 두번 밖에 구경할 수 없는지라 카메라를 들고 등산화 신고 앞동산으로 갔다.
아직 아무도 온적 없는 길일줄 알았는데 한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눈길위에 발자국 흔적이란 얼마나 선연한지.
동백의 초록잎위에 하얀눈이 소복소복,, 시린풍경이라기 보다는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부지런한 길손이 이렇게 예쁜 눈사람을 만들어두고 갔다.
나같은 사람이 올것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해둔 반가운 인사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산을 넘어서 초등학교 정문에도 커다란 눈사람이 만들어져 있었다.
화난것 같은 눈사람, 문지기라서 수위아저씨 흉내낸다고 그렇게 만든건가 싶기도 했다.ㅎㅎ
입꼬리를
살짝 올려 줄까 하다가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올려주고 올걸 싶은 생각이 든다.이것을 만든것 같은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청년 둘이서 건너편 동산위에서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눈이 그치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거리로 몰려 나오고 동네는 금방 부산해졌다.
포대들고 설매타러 강아지와 함께 동산으로 오르는 녀석들도 있고.
도로위를 거북이보다 더 엉금거리는 차들의 모습, 도시가 갑자기 내린 눈으로
느긋하고 한산해진 느낌이 들었다.
강아지풀이 눈의 무게로 허리가 꺽였다. 힘들어 보였다.
털어주고 싶었지만...제 삶의 무게일것인지라 그냥 사진만 담아왔다.
며칠만 따뜻해도 겨울눈속 노란 봉오리가 주책없이 튀어나오는 개나리꽃.
이 성급한 개나리는 어제 내린 눈에 아마도 밤새 꽁꽁 얼었을 것이다.
날씨가 개나리를 속이는 건지 개나리가 날씨에 넘어가는 건지
개나리의 이런 주책스런 모습은 사시 사철 자주 보게 된다.
봄의 전령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개나리는 따뜻한 것을 그리워하는 습성때문에
이런 모습을 자주 보이지 않을까..
우리 살아가는 일도 주책맞은 일이 얼마나 많을까.
돌아보면 그러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걸 싶은 생각 드는 일들이 어디 한 두번 일까.
따뜻한 것이 그립더라도 따뜻하더라도 제 때를 알고 제 철임을 알고 피워야 정녕 아름답지 않을까.
눈맞으며 개나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눈맞은 개나리 꽃을 보면서 개나리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나를 보았다.
눈맞은 개나리를 보면서 개나리보다 잘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더 아름다와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