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장례를 마치고..

구름뜰 2010. 4. 4. 22:41

 

 

영안실 앞 화단에 전지된 나무에서는 새순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좋은 계절에 생명들이 아우성치는 이 계절에  어머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낯선 공간 낯선 시간속에서 보낸 며칠간의 의식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겐 만남의 장이었다.

이승에서의 그 숭고한 이별의식은 죽은이를 위한 명분이 먼저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산 사람들이 위로받는 의식같기도 했다. 

 

 

올해 만으로 여든아홉이셨던 어머님은 열일곱 꽃다운 나이 때부터  교회엘 나갔다고 한다.

당시(30년대)에는 교회에서 글을 가르쳐 주어 신앙보다 글 배우기 위해서 였다고한다.

그 시작이 평생 하나님만 알고 하나님만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삼우날인 오늘 어머님이 다니시던 교회에 8남매 자손들이 들렀다.

마침 부활절이라 예배가 기도가 성경 찬송 구절구절이 어머님을 위한 예배인듯 했다. .

그리도 가쁜 호흡을 하시면서 버티셨던건 이날을 예비하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늘 혼자만 와 계시던 예배당에 어머님은 없고 자녀들만 모두 모여 있으니

어머님 생각이 더 간절했던지 목사님이 기도중에 울컥하시기도 했다.

 

 

 

예배가 끝나고.. 종탑밑에 이렇게 예쁜 튜울립 꽃이 피어 있었다.

그늘에서 피는 꽃은 늦게 피지만 색이 훨씬 곱다는 김점선 화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측백나무 그늘 아래에 피어 있어서 그런지 정말 고왔다.

튜울립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어떤 신도님이

저쪽으로 가면 튜울립 천지인 꽃밭이 있다며 알려 주셨다. 

가보니 정말 예쁜 꽃밭이 꾸며져 있었다.

 

 

 

햇볕이 강한 곳의 꽃 색은 그늘보다 덜 고왔다.^^

 

 

 

이럴땐 꼭 수줍음 많은 소년같은 목사님 그리고 어머님 미소를 닮은 두분,

담아가고 싶다고 했더니,..기꺼이. 응해 주셨다.

두분의 해맑은 얼굴에서 순수하고 맑은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투병기간(20개월) 동안 한 달에 한번은 꼭  병문안 오셨던 목사님.

신앙이 없는 나는 목사님들이나 목회 활동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은 없었지만, 

시골교회 목사님을 보면서 저런분이라면 말씀 듣고 싶어서라도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철 갑자기 비가 오면, 들에 계신 노인들보다 먼저 빈집으로 달려가

홀로사는 노인들 마당 설거지해 주시고,

장날, 맛난것 있으면 꼭 사다가 맛보라고 넣어주시고,

약 칠일 있어 고민하면 약통메고 직접 쳐주고,

오며가며 들에서 일하는 노인들 있으면 일 도와주시고,

필요한 물품 있으면 심부름하듯 장 봐다 주는 건 기본이시다.

어머님 쓰러진 해에도 어머님이 마무리 짖지 못한 일을 당신과 사모님이 거두어서

소출이라며 우리집으로 보내주기도 했던 분이시다.

 

옆에는 어머님의 절친이시다.

지난 초가을 김장철에 직접 농사지은 배추를 보면서 워낙 좋아했던 어머님 생각이 나셨던지

너희들이라도 대신 먹으라며 가져고 오셨던 분이다.

그 것으로 백김치를 담궈서 초겨울 내도록 잘 먹은 기억이 있다. 

 

목사님과의 추억은 더 많다.

지난 겨울, 중환자실 앞에서 지쳐있는 내가  애처러웠던지 사모님과 함께 와서는

맛있는 것 사주겠다며 먹어야 한다며 칼국수를 사주던일..

그때 그 더운 칼국수 맛은 잊지 못할 음식으로 기억속에 남아있다.

병문안 올때마다 차비드리는 내가 부담스럽다며 몰래 다녀가시기도 몇번이나 하셨던 그런 분이시다.

 

두분을 만나면 어머님을 만난것처럼 얘기가 잘 통했다.

너무도 잘 아는 두분을 통해 만날때마다 어머님을 추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분과는 병문안으로 情이 들었다. 

오늘 헤어지면서 일요일 아니어도 오고 싶으면 오겠다고 했더니

얼마든지 그러라며 배웅해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인연인지..

 

 

 

어머님 산소가는 길에 이렇게 예쁜 할미꽃이 피어 있었다.

'소담스럽다'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노란 산수유도 피어있었다. 꽃색이란 참 곱기도 하지..

 

 

무덤 앞에 매화나무를 심은지가 10여년 되어 가는데

제법 몇그루가 살아남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몸은 아버님 곁으로 가셨지만,

영혼은 아마도 당신이 평생토록 사랑했던 님, 하나님 곁으로 가시지 않았을까. 

 

어머님 임종을 보고나서부터 마지막 하관까지..

염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그 손길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이번에 보았다.

모든 장례의식들을 총괄하다보니 이번참에 많은 것을 알게되었고 보게 되었다..

임종예배부터, 입관, 발인, 하관예배까지 목사님 집도하에 진행했는데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간소했다. 기독교 식이라서 그렇기도 했다.

 

장지에서도 상조와 관련한 분이 처음부터 끝까나 함께하면서 다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준비안되어 있으면 연결고리가 있어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묘를 쓰면서도 취토(상주가 상복 자락에 흙을 세 번 받아 광중 맨 위에 한 번, 가운데 한 번,

아래쪽에 한번씩 차례로 놓는것)외에는 상주들 손하나도 빌릴 것이 없었다.

영안실에서부터 얼마나 편리하게 전문화되고 분업화되어 있는지, 

사진만 준비해 들고가면 상주가 원하는대로 진행이 된다.

 

 

나죽거든 돈만 들고 쓸모 없는 꽃일랑은 절대로 사지 말라고 하셨지만,

당신을 애도한 국화꽃 행열이 얼마나 장관이었는지...

 

이젠 봄비나 흠씬 내려서 잔디가 뿌리를 잘 내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머님이야 산소 앞에 매화로도 충분하다고 하실분이지만,

어딘가에서 일편단심 민들레 홀씨도 날아들고,

이름모를 들꽃들도 많이 날아와서 어머님 무덤가에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 

아니, 무덤가에 어머님 닮은 이렇게 소박한 할미꽃이라도 많이 많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그 꽃 들여다 보면서 어머님 만난듯 반가워하며 추억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