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이야기..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스물두살에 서울로 시집간 친구가 있다. 어른들의 주선으로 갑자기 가게 되었다고 연락이 와 갔을때, 친구는 시집가는 날 입을 한복을 보여 주었다, 그 치마색이 요 할미꽃 색 이었다. 한복을 입고 한바퀴 도는 친구의 움직임이 빛의 각도에 따라 희끗희끗 광택선이 생기는 것 까지, 친구와 그 치마색이 얼마나 고왔는지...눈물이 날 정도였다.
갑자기 닥친 이별과 행복해하는 친구의 모습까지 여러 감정들이 오버랩되어 왔던 일, 아직도 영상처럼 그녀가 좋아하던 모습이 남아있다. 그때 '나도 나중에 저런 색을 입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어쩌다 한복 할 일이 있으면 그 색을 찾지만 한번도 그 때 친구의 것처럼 고운 색을 나는 본적이 없다.
'현미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 중학교 2학년 때 전학 갔을때의 짝궁이었고, 성모당 순례도 함께 했고 대처에서의 새로운 문물도 많이 알려준 친구.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할미꽃의 꽃말은 슬픔, 추억이라고 한다.
무덤가에 많이 피는데 요즘처럼 잔디 새순이 돋기 전, 떨어진 동전 줍듯 작정하고 찾지 않는한 눈에 잘 띄지 않은다. 찾는 이 에게만 띈다고 해도 될 만큼 1미터 남짓 가까이 있어도 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님 장례식날 묘 쓰는 동안의 긴 기다림의 시간에 옆의 묘지에서 찾은 꽃이다. 장례식날 봐 두었다가 삼우날 담아왔다..
할미꽃의 붉은 속내는 겉으로 보아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 속을 볼려면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 보거나 꽃송이를 살며서 들춰야 한다. 보라 보다는 붉은, 멍든 붉은색 같은 꽃, 친구의 치마를 보던 그날 부터 좋아하게 된 색, ...옷감으로는 몇 번이나 찾고 싶어도 못찾은 색, 추억속의 색이라 다시 볼 수 없는 색일지도 모르겠다.. .
보송보송 흰털로 비가 와도 젖지 않을것 같은 꽃,,. 꽃대가 날때 부터 굽어 있어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이라는 노랫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꽃이 지고나면 씨앗을 퍼터리기 위해선지 꽃대가 갑자기 키다리처럼 쭈욱 올라가는데, 그때 모습이 백발의 산발한 할머니 머리같기도 하다. 빗질 해주고 싶을 만큼 엉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바람탓인지도 모르지만 작년 봄에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다.
웬만한 것에는 미동도 않겠다는 듯 처연한 꽃, 뽐낼일도 자랑할 일도 없는 듯 아니 관심없단 듯, 저 혼자로 아름다운꽃,, 저혼자로 한없이 족해 보이는 꽃, 그래서 편안하고 소박한 우리네 할머니가 절로 연상되는 꽃,, 이 꽃을 찬양한 시들도 역시 꽃만큼 아름답다. ..
애꿎이 흰털 나고 허리는 굽어 오나
붉은 피 뛰는 마음 어느 뉘가 알리이까.
설움에 눌리운 고개 숙인 채로 지누나 -- 오신혜
길가의 할미꽃은 길손을 불러 세고
몸이란 늙어 뵈도 맘만은 젊었다고
새빨간 제 심장 뽑아 보라는 듯 하외다--장정심
지심에 사무쳐라 땅을 굽어 뿜는 불이
타고 다시 타서 타다 못해 검붉어를
도리어 백수로 된들 탓할 것이 없어라..-김기화
보리밭 가에
찌그러진 무덤
그는 저 찌그러진 집에
살던 이의 무덤인가
할미꽃 한 송이
고개 숙였구나
아아 그가 사랑하던 보리 --이광수
겉보고 늘다 마오 마음 속으로 붉은 것을
해마다 봄바람에 타는 안 끄지 못해
수심에 숙이신 고개 어느 분이 알리오 - 이은상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삐이 배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박두진 묘지송
모란은 화왕이 되고 장미는 가인이 되고 할미꽃은 장부가 되어 포의에 가죽띠를 띠고 머리에 하얀 털을 이고 지팡이를 짚고 비슬비슬 걸어와 허리를 고부리고 "나는 경성 대로방에 있는 할미꽃이외다. 장미는 갖은 아양을 다 부리며 임금을 유혹하고, 할미꽃은 바른 말로 임금게 충간하되 하왕은 가인에 반하여 장부의 말을 잘 듣지 아니하므로 나는 본디 임금이 총명하고 의를 안다기로 해서 왔더니 아니로군" 하며 명현의 불우한 것을 탄식하자 화왕이 그제서야 깨닫고 짐이 잘못이라고 사과하였다. -설총 화왕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