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주석없이 - 유홍준
구름뜰
2010. 5. 18. 08:41
탱자나무 울타리를 돌 때
너는 전반부 없이 이해됐다.
너는 주석 없이 이해됐다.
내 온몸에 글자 같은 가시가 뻗쳤다.
가시나무 울타리를 나는 맨몸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가시 속에 살아도 즐거운 새처럼
경계를 무시하며
1초 만에 너를 모두 이해해버린 나를 이해해다오
가시와 가시 사이
탱자꽃 필 때
나는 너를 이해하는데 1초가 걸렸다.
무릇 사랑이란, 단 "1초 만에 너를 모두이해해버리"는 것이다.
직방의 사랑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히지 않을까.
그게 바로 사랑의 위력이기도 하거니와, 사랑은 이토록 철저히 직관이라는 왕국의 신민(臣民)인 셈이다.
시인에게 사랑이란
'너'를 "전반부 없이 이해 하는 것."
"주석없이"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그는 마치"가시나무 울타리를 / 맨몸으로 비집고 들어가" 듯 "온몸에 글 자 같은 가시가 뻗치는" 듯, 고통스러울 만큼 강렬한 느낌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기꺼이 그러해야 할 것이다.
"가시속에 살아도 즐거운 새처럼/ 경계를 무시하며" 말이다.
탱자꽃은 "가시와 가시 사이"에서 아름다운 별무리처럼 오롯이 돋아난다. 그게 사랑이다.
이해해다오 그대들이여, 보라, 시인은 시에서 사랑이란 말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그러고도 할 말 다 했지 않은가.
그러니 그대들이여. 사랑에 대해 요모조모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 엄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