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일상의 사소함으로,
진실로 사랑하는 까닭을 한없는 기다림으로,
사랑을 관조하는 처연한 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詩
이 시는 제목이 주는 여운 때문에 편지를 주고 받았던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밤늦게까지 공부는 하지 않았어도 편지는 많이 썼던 시절ㅎㅎ
그 쓰는 시간이 좋았고 표현하고 전하는 일이 의미있게 느껴졌던
질풍노도라기 보다는 가슴앓이 같은 시간들이 있었다.
사실 그 시절엔 그것이 가슴앓이 시절인 줄도 몰랐다.
대상에 대한 몰입이라기 보다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었고,
글씨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쓰다 만 파지가 보낸 편지보다 몇 배는 많았던 시절,
아침이면 서랍속으로 들어가고 말 것을 어찌 그리도 그 밤엔 정성을 다 했는지
그런 쓸데 없는 짓 같았던 습작의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아름답게 남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맹목적 순수의 시절이라면 말이 될까. 흰눈 같았던 시간들!
다시 편지를 쓰거나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면 그때처럼 순수할 수 있을까. 여전히 그럴수 있을까..
현실과 이상, 평행선같아서 이것 때문에 저것을 저것때문에 이것을 옳아 맬 수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꿈 꾸고 시를 쓰고 노래하는 것 아닐까.
이상은 이상으로 아름다운 것이고, 현실은 현실로 값진 것이므로,
이 시는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아들 황동규 시인의 등단 작이다.
<즐거운 편지>라는 제목을 붙여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일상으로 이루어 내고 만 사랑을 노래한 시다.
불가능한 것, 옳아맨다고 옳아매지지 않은 이런 것들이 있어서
시도 쓸수있고, 노래도 하는게 아닐까.
이런 것들 때문에 삶이 더 여유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뉘라서 아니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