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세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가까이
사람고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김광섭(1905~1977) 호는 이산(怡山) '기쁜 산'이다.
그는 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창씨개명을 반대한 교육자,
광복 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한 우익 문단의 건설자,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언론사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으로 현대사 100년을 정말 '산'처럼 살았다.
"돌 깨는 소리가 채석장에서 울리면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
그러나 저것들이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인가.
돌 깨는 산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집들은 모두 시멘트로 지어서 마음 놓고 내릴 장소도 없는 저것들이란 데 생각이 머물렀어요."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하던 중 성북동 집 마당에 앉아
하늘을 돌아 나가는 비둘기떼를 보고 착상한 詩라고 한다.
유심초가 부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노래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의 시, <저녁에>도 명작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나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비둘기를 보면, 밤하늘을 보면 생각나는 詩들
시의 아름다움은 시인의 마음을 언제나 내것으로 和할 수 있는 것,
시인의 시심까진 못 닿았더라도 내 그릇만큼 공감하며 내 시심인듯 착각에 빠지는 즐거움도 있다.
워즈워드는 "어릴적에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가슴이 뛰누나"라고 했지만,
내게는 좋은 글(장르 불문)을 만나면 그런 가슴이 된다. 좋은 사람 만난듯 설렘이 인다.
이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좋은 책 한권이면 부족함 없는 일상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