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오바마처럼' 해볼까 - 펌글
[한겨레]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며칠 전 정장 차림으로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 한 지인이 다가와 "오바마 넥타이 매셨네요"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저 미소로 답했다. 사실 그 타이는 20여 년 전부터 매 오던 것이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대중적 인기는 '오바마 따라하기 열풍'으로 대변되는 것 같다. 오바마처럼 입기, 오바마처럼 마시기, 오바마처럼 꿈꾸기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오바마처럼 말하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오바마 스피치 따라하기를 연습하는 학원도 있다고 한다. 서점에는 오바마의 연설에 관한 책들이 여러 권 나와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오바마가 미국 정치 무대에서 급부상한 것도 연설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그의 연설에는 흑인 특유의 음악적 리듬감이 살아 있다고 한다. 적당히 굵은 목소리는 안정감과 함께 진취적 인상을 준다. 그가 목소리의 고저·강약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탁월한 기술을 발휘한다고도 한다. 곧 강조할 문장과 그러지 않을 문장을 절묘하게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내가 오바마의 연설에서 받은 느낌은 그가 '생각하며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듣는 사람에게 깊은 신뢰를 준다. 연설하는 사람이 '자기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설문이 자신의 땀으로 젖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곧 자신이 쓴 연설문이어야 한다. 자신이 쓴 연설문을 바탕으로 대중 앞에서 말할 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곧 연설문에 '매인' 것처럼 말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연설의 기술이라고 여기는 부분들, 억양, 리듬감, 극적 표현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고 임기응변에도 능할 수 있다. 자유롭게 말하는 사람은 설득력이 있다. 자유롭게 말하려면 자신이 연설문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오바마의 뛰어난 연설 능력 뒤에는 글쓰기가 있는 것이다. 전문적인 연설문 작성자들을 두고 있는 대다수 정치인들과 달리 오바마는 연설 원고를 직접 쓴다고 한다. 그가 직접 쓴 원고를 잘 다듬는 정도의 일이 연설문 작성자들의 몫이다. 이는 전문 보좌관이 미리 작성해준 연설문에 첨가와 수정을 하는 다른 정치인들과 반대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물론 점점 유명 정치인이 되면서 연설 원고 쓸 시간을 내는 일이 어려워졌겠지만, 오바마는 수시로 메모하고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연설 원고를 작성한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학생 때부터 꾸준히 글을 써 왔기 때문이다.
'오바마 따라하기' 열풍으로 돌아가 보자. 이왕 따라할 바에야 오바마처럼 해서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을 얻으면 더 좋지 않겠는가. 오바마 스피치를 연습해서 오바마처럼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반면 오바마처럼 청소년기부터 글쓰기를 연습하면 그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을 것이다. 지금 영어 글쓰기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언어로든 글쓰기 실력은 다양한 문화적 능력의 바탕이 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도 잘할 수 있지만, 달변이라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이는 일상에서도 충분히 관찰할 수 있다. 한 가지 언어로 글을 잘 쓰면, 다른 언어로 글쓰기를 익히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글쓰기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은 글쓰기의 특별함에 대해 흥미로운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저서 < 인간의 유래 > 에서, 언어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혼 투크가 인간의 언어를 술을 빚고 빵을 굽는 것과 같은 기술이라고 한 것에 반대한다. 다윈은 술빚기(brewing)와 빵굽기(baking)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은 글쓰기(writing)라고 주장한다. "아이의 종알거림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말을 하려는 본능적 성향이 있지만, 어떤 아이도 술을 빚거나 빵을 굽거나 글을 쓰려는 본능적 성향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활동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발효'이다(다윈이 한국인이었다면 김치 담그기를 예로 들었으리라!). 발효 문화는 인간의 지혜와 노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적합한 지식과 세심한 노력으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극복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문자로 생각을 발효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발효 문화의 정수'라고 할 만한 것이다. 남에게 내놓을 수 있을 만한 글을 써본다는 것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일을 해봄을 뜻한다. 첫째, 생각을 해본다는 뜻이다. 곧 어떤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본다는 뜻이다. 둘째, 노동을 해본다는 뜻이다. 자료 수집과 분석에서 사고의 정리와 표현의 결정 그리고 퇴고에 이르기까지 힘든 일을 수행해본다는 뜻이다. 셋째, 공적으로 자신을 노출해본다는 뜻이다. 글쓰기는 외부를 향한 전인격적인 투척이다. 그래서 노출의 고통을 경험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람을 훌쩍 크게 만든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2009년 4월 26일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