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다산 정약용은 사람이 누리는 복을 열복(熱福)과 청복(淸福)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열복은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출세 같은 복을 말하며,
청복은 욕심 없는 마음의 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한다.
물질 보다는 정신적 만족의 중요성을 얘기한 청복을 누리는 사람을 하늘도 귀히 여긴다고 한다.
하늘도 귀히 여기는 청복!
그렇지만 우리는 대부분 남들보다 잘 살고 잘 먹고 많이 가지고 싶어 한다.
가난하거나 지위가 낮으면 대접받기 힘든 사회풍조 이고 보니
청복보다는 열복을 더 중시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살면서 열복을 대대로 누린다면 그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돈이나 권력이면 못 할 것이 없는 세상이고 보니, 그 환경에 익숙하게 되고
뜻대로 안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진 자가 더 욕심 부리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가진 자는 그 가져본 맛을 알기 때문에 맛을 보지 못한 사람들보다
그 것을 쟁취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욕심이 훨씬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가진 자 들이 더 많고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열복을 누리면서 청복을 함께 누리기가 힘든 것이 마음의 여유인데
열복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청복의 장애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10월 어느 행사장에서 올해 초선 시의원이 된 지인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할 만한가 물었더니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재밌다”고 했다.
그날도 행사장 나들이가 7곳이나 되며 가는 곳 마다
대접받고 인사하는 게 다지만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지인의 도끼자루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도 지인은 열복을 누리면서도
청복의 소중함을 잃지 않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복은 타고난다거나 운에 따라서 자신에게 온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청복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품성, 잘 다듬고 가꾸는 마음자리 속에
깃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참 공평한 세상인지 모른다.
하늘도 아끼는 복을 내 품성으로 매 순간마다 누릴 수 있으니.
청복을 누리다보면 열복의 필요성을 못 느낄 것 같고 저절로 따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들, 공기처럼 물처럼 복도
내가 가질 줄 모르고 누릴 줄 모르는 내 심성 탓 인지도 모른다.
참다운 복은 자신만의 의미를 찾을 줄 알고, 그것에서 행복감을 느낄 줄 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일상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볼 줄 알고,
그것들이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깊어지고 쌓여갈 때
나이 드는 것도 복되는 일임을 뉘라서 아니라 할 수 있을까.
깊어가는 가을 청아한 행복, 청복을 한번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