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길들인 다는것
나는 어려서 개를 좋아했다. 개띠여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자 형제들 틈에서 외로이 자란 내게 개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른이 되면서 옛말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아이가 자라면서 개를 몹시 원했다. 우리는 집안에서 개를 키우게 되었다. 개는 날이 갈수록 자신을 사람이라 생각하고 우리도 그 개를 가족이라 여겼다. 개는 우리 곁에서 15년을 머물렀다. 말년에는 귀가 멀고 눈도 멀었다.
때마침 새로 이사간 아파트에서는 개를 키우지 못하게 하는 회의가 진행중이었다. 우리집에서 반상회가 열리던 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짐작 못하는 개는 자기에게 날을 세우는 사람들에게조차 비틀거리며 다가가 반겼다. 잿빛으로 변해버린 유령은 마지막 남은 감각을 사용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이웃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무조건 개를 없애라는 규정이 부당하다고 생각됐다. 그후 개는 두 차례의 수술을 더 겪고, 우리 곁을 떠나기 얼마 전 옴몸이 마비되는 고통 속에서 살다가. 마지막 가던 날 우리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몸 안의 것들을 다 뱉고 조용히 갔다.
하얀 국화 송이를 덮어 묻어주던 날 나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기로 했다. 그로부터 이년이 넘게 흘렀다.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반겨 주던 존재의 부재에 대한 허전함에 익숙해질 무렵 아이도 훌쩍 커버렸고 나 홀로 남겨진 시간이 많아진 집안에는 웃음이 잦아들고 있었다. 가끔 쓸쓸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강아지라도 키워보라고 했지만 또다시 겪어야 할 그 엄청난 책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전에 키우던 개가 환생을 한 거라며 같은 종의 새끼를 어디서 얻어왔다. 견생의 생로병사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아파했던 나는 남편에게 개를 도로 돌려주자 하고 다가오는개를 피해 다녔다. 개는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너 누구야 정말 00맞아?" 며칠 후 나는 개와 눈을 맞추고 진지하게 물었다. 개는 멈칫하더니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나를 길들여 달라는 듯한 눈빛. 나는 비로소 그 개를 '봄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주 조그만 관심에도 기뻐하고, 화내면 불안해하고, 슬퍼하면 위로해주고 즐거우면 함께 겅중거리는 봄이,
탄소, 수소, 산소, 질소, 등의 원소로 이루어진 내 속에 우주가 있고 우주 안에 내가 있다. 어떤 연유로건 간에 내게 온 생명. 살아있는 것은 귀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미물일지라도 생명은 태어난 의의가 있는 것 같다. 한 생명을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일이며 길들인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하지 않던가. -백옥경
** 작년 1월 28일자 대구매일신문사 <매일춘추>에 실린 지인의 글입니다. 지면을 통해 알려진 '봄이'덕분에 함께 하는 자리에선 '봄이'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우리 주변엔 수 많은 봄이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지요. 가버린 봄이도 있을 것이고 새로온 봄이도 있겠지요 길들여지고 관계맺는 다는 것, 그것은 곧 아니 반드시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의심없는 순정한 본성에 함께한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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