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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타흐리르 광장

구름뜰 2011. 2. 9. 17:45

[배명복의 세상읽기] 2011년 2월 타흐리르 광장

[중앙일보] 입력 2011.02.09 00:27 / 수정 2011.02.09 00:27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카이로가 서서히 본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이집트 역사상 유례가 없는 소요 사태로 일주일 이상 문을 닫았던 은행과 상점들이 며칠 전 다시 문을 열었다.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던 기업과 공장들도 빠르게 업무를 재개하고 있다. 카이로의 상징이 된 극심한 교통 체증도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전에 비해 카이로의 교통 사정은 훨씬 심각해졌다.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기 일쑤다. 도로 하나를 빠져 나가는 데 몇 십 분씩 걸리기도 한다. 카이로 시내 한복판에 있는 타흐리르 광장이 시위대 때문에 봉쇄된 것이 차량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군인들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도 아직 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일시적 요인으로 설명하기엔 문제가 있다. 카이로의 도로 사정이나 교통 체계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 사이 자동차는 크게 늘었다.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처럼 이면도로가 발달한 것도 아니다. 막히면 대책이 없다.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다독이는 수밖에 없다. 카이로는 성미 급한 한국인의 정신 수양에 딱 좋은 곳이란 생각도 든다. 정신 수양도 좋지만 한국 같으면 이미 난리가 났을 것이다. 급한 성격 때문에라도 길을 뚫든, 도시 정비를 하든, 교통 시스템을 바꾸든 무슨 수를 냈을 것이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꼭 미덕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빨리 하고, 못 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참는 것이 진짜 인내다.

 이집트인들은 정말 오래 참았다.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건설하며 살인적 노역을 견딘 것이 기원전 2700년이었다. 이집트에서는 모든 것이 통치권자의 소유였다. 근대적 의미의 소유권 개념이 도입된 것은 1850년대 들어서다. 시민사회라는 것이 있었을 리 없다. 처벌의 공포 속에서 지배계층의 압박과 통제를 견디며 살아 왔다.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는 단순히 호스니 무바라크 30년 독재에 대한 항거가 아니다. 참고 견디는 것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온 자신들의 DNA에 대한 반항이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메카가 된 타흐리르 광장은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축제의 장이 됐다.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카이로=배명복 순회특파원]


 이집트의 리버럴 계열 신문인 알람 알 윰지(紙)의 사아드 하그라스 편집국장은 “이번 사태는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시민혁명”이라고 강조한다. 이집트 민중이 지배계층에 대해 이런 저항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집트 역사는 1·25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문자메시지를 보고 타흐리르 광장에 사람들이 처음 모인 2011년 1월 25일이 이집트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안 물러나는 차원의 문제를 이미 넘어섰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