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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구름뜰 2011. 2. 14. 19:16

사람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착하게 오순도순 살아가는, 그래서 써놓으면 늘 예쁜 이야기가 되는 글. 혹자는 내가 꾸며서 이야기가 예뻐지는 거라고 하겠지만, 내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얄미우면 얄미운 대로 미워할 수 없는 아름답고 가슴 찡한 주인공들이었다. 글쓰기에 자신감이 있다면 어느 시인처럼 ‘만인보’를 수필로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 사람은 절대로 아름답지 않다. 나는 소심한 환경주의자다. 아프리카에서 터전을 잃고 멸종해간다는 고릴라에게 미안해서, 오래된 휴대전화를 당당하게 들고다닌다. 이런 내가 대중탕에 가면 어느 정도 마음 불편함은 각오해야 하는 바이지만, 요즘은 손으로 눌러 잡고 있지 않으면 물이 멈추는 절수 샤워기 덕분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광경을 오늘은 보고 말았다.

샤워기의 절수 기능을 비웃는 듯, 고무줄로 친친 감아서 물이 계속 흐르게 만든 샤워기 두 개가 뱀처럼 길게 담겨서 사람은 없는 채 물은 콸콸 쏟아져 넘치고 용납되지 않을 만큼의 빨랫감과 여러 개의 바가지 등등, 실로 대단한 장면이었다. 웬만하면 성큼성큼 다가가서 물을 잠그고 싶었지만 벗고 있는 상황에서 잘난 척, 고상한 척, 나설 자신감은 없고 자꾸 신경만 쓰였다.

무슨 용무인지 자꾸 들락거리면서도, 한참 동안 각질을 벗기면서도 수도꼭지는 잠시도 잠그지 않고 물은 계속 쏟아진다. 용기 없고 비겁한 나를 대신해 누군가 제발 좀 간섭해주길 바랐지만 그의 지인들은 인사를 하고 수다를 떨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모두들 무신경의 극치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조용한 시간의 목욕탕을 요란하게 하더니 웬일로 고요해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수구 배수로까지 손끝으로 더듬고 쓸며 뭔가를 찾고 있다. 렌즈나 보석 알맹이가 아니면 절대로 그럴 수 없는, 분명 아주 작고 귀한 것을 잃어버렸음에 틀림없을 그런 자세. 오래된 드라마 엑스트라로나 등장할, 억울한 표정으로 정말로 딱한 짓을 하고 있다. 내가 나가고 나면 이 자리도 쓸어볼 태세다. 그 수압에 뭔들 떠내려가지 않았을까.

“엄마, 그 아줌마 벌 받고 있는 거 봤지?” 딸아이도 쌤통이라는 표정이다. 목욕탕 바닥을 네 발로 기는 벌을 스스로 받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분하다. 콸콸 흐르던 물소리며, 어질러 놓고 돌아다니던 자리며. 아무리 이해하고 잊어주려고 해도, 아무리 착하고 예쁘게 보는 렌즈를 사용하려 해도 안 된다. 이렇게 마음 쓸 거면서 용기 내어 잠그지 못한, 행동하지 않는 나 역시도 한 치 다를 바 없다. 웬만하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웠는데…. 이날만큼은 아니었다.              

윤 은 현  경일대 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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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2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