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강도에게 주는 시- 돈 안 되는 행복

구름뜰 2011. 2. 15. 10:14

 

 

 

어슥한 밤거리에서

나는 강도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빈 주머니에서 돈 이 원을 꺼내 들은

내가 어째서 울어야 하느냐.

어째서 떨어야 하느냐.

강도도 어이가 없어

나의 뺨을 갈겼다.

…이 지지리도 못난 자식아

이같이 돈 흔한 세상에 어째서 이밖에 없느냐.

 

오 세상의 착한 사나이 착한 여자야

너는 보았느냐.

단지 시밖에 모르는 병든 사내가

삼동 추위에 헐벗고 떨면서

시 한 수 이백 원

그 때문에도 마구 써내는 이 시를 읽어보느냐.

--오장환

 

 

왜 분노해야 할 시점에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가.

돈 이 원을 내미니 강도가 어이가 없어 도리어 뺨을 갈기더라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시적인가.

식민지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시인은 여전히 가난하다.

여기저기서 뺨을 맞는지도 모른다. 봄꽃에게 맞고 이별에게 맞고

천박한 자본주의에게 더 세게 맞을 게 뻔하다.

시인이 가난한 이유는 돈이 안 되는 것들만 사랑하기 때문이다

초사흘 벼린 달을 사랑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둥그런 눈을 사랑하고,

세찬 바람만 끊임없는 겨울 밭둑을 사랑하고, 지는 노을 앞에 하염없이 서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달이, 소가, 바람이, 노을이 어떻게 돈을 준단 말인가.

--이규리 시인

 

 

 

 

근래에 독특한 경험을 했다. 

아내들끼리는 초면인 부부동만 모임에 참석할 일이 있었는데 나가는 길에서야 남편은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것'이라며 언질 주듯이 한마디 했다.

통성명을 하고  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그분인가?' 싶은 분이 내 이름을 확인하며 반색했다.

"저를 모르죠?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10년도 넘게 지켜봐 온 이름이거든요."

연예인도 아니고 공인도 아닌데 그분은 남편도 나도 오래되어서 잊고 있었던

지난날들의 개인적이지만 작은 기념될만한 일들까지 다기억하고 있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일인가..

 

의아해하는 내게 자신의 오래전 지인(아마도 그 사람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이름 아닐까 싶다!)과

내가 동명(同名)이라고 했다. 10년 전쯤, 자신의 업무와 관련한 일로

우연히 백일장 수상자 명단을 보면서 이름석자가 눈에 띄었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행사장이든 지면이든 이름석자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잊고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주니, 고맙기도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나 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이유로도 이렇게 섬세하게 기억될수도 있구나. 

조심하면서 살아야 겠구나 적어도 같은 이름들에라도 누가 되지 않도록 ,,

 

듣다보니 동명지인에 대한 좋은 느낌 덕분에  내게 미친 후광을 누린것 같았다.

윤색(潤色)되어진 내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미치지 못하는데 미친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다. 

나와는 상관 없지만  나로 인해 다른 이에겐 색다른 이유가 되기도 하는 일,

눈꼽만큼의 공인도 아닌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이번 일로, 잠시 누려본 영광으로 든 생각은

사회 지도층이나 자신의 평판이 다른 사람들에 입에 오르내일 정도의 공인이 된 사람들은

경계하며 이름값하고 살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사회가 그들에게 바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이름값 좀 하고 살라는 맥락이 아닐까 싶다.

 

 

위 시의 시평을 쓴 이규리 시인은 내 오랜 지인으로 부터 얘기를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는데. 

그녀보다 늦게 알게된 지인을 통해서도 일맥상통한 선생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름만으로 친애하는 분이 되어 있어서 그랬는지

작년 12월  초면이었는데 위의 그 분처럼 내겐 더 반가운 자리였다.   

그리고 다음날 대구 매일에서 올 한해동안 '시와 함께'라는  코너를 맡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는

지면을 통해서 쭈욱 뵙는 반가움을 즐기는 분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얼마나 조화로운지.. 

나만 알고 마음으로 만나는 만남도 있고, 못만나고 살지만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굳이 만남이 필요치 않은 만남도 얼마든지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요란스럽지 않아서 좋고, 내안의 나를 만나는 것처럼 편안하고

나 혼자 깊어지고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좋은 사람은 나 혼자 만나는 것으로도 좋은 것이다. 

 

이 시에 붙여진 시평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혼자서 웃다가

이런 긴 얘기들을 쏟아내게 되었다. 

솔직히 내가 봐도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들은 대체로 돈 하고는 상관 없는 것들이다. ㅎㅎ

누구나 가질수 있고, 나눌 수 있지만, 값으로 매겨지지 않은 것들.

무관심해지지가 않고, 통하는 이들이 있다면 나누고 싶은 부분들이 대체로 그렇다. 

위에 든 시평처럼,  봄도 좋고 꽃도 좋고 봄꽃은 더욱 좋고 그런 식이다...

 

"어찌 그리 돈안되는 것들만 좋아하냐?"

나도 그런 생각 안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말을 유일하게 내게 하는 남편,

덕분에 그래도 가난하지도 않고 부자이지도 않은 지금이 좋다. 

시를 쓸려면,  돈하고는 상관없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조금 비슷한것 같은데

그리고 가난해야 더 좋은 환경일것 같은데,,  좋아는 하지만 가난이 좋을리 없는 속물이니,

변변한  시 한편 써 본적 없고, 마음에 드는 글 한편 생산해내지 못한것은, .

어쩌면 가난하지 못해서 그런것일까.. ㅎㅎ

그렇더라도 가난보다는 기꺼이 지금의 상황이 좋은니,  

아마도 내게 좋은 글 한편!은 요원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좋다..

굳이 이름값에 신경 안쓰고 살아도 되어서 좋고,

돈 안되는 행복을 즐길 줄 알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