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가르기
큰아이는 남편을 닮았다. 조심스럽고 깔끔하다. 벗어놓은 빨래는 안 입은 것처럼 깨끗하지만 형식적으로 세탁기에 넣어준다. 양말은 뒤집어 벗어놓은 적이 없다. 이상한 자리에 던져지는 경우도 결코 없다. 자기가 먼저 친구들을 모아 놀러나가는 꼴을 못 봤다. 누군가 불러줘야 나간다. 남이 주선해 놓은 모임이지만 기꺼이 어울린다. 잘은 모르지만 남편도 비슷하다. 가슴보다 머리를 먼저 쓰고, 놀이보다 일이 우선인 그들.
편 가르기는 미안하지만 작은아이는 나를 닮았다. 교복 셔츠를 이틀만 입으면 더러워서 못 봐준다. 저녁에 샤워하고 자도 아침이면 야생의 냄새가 난다. 양말은 요렇게 벗는 것이라며 아무리 보여줘도 뒤집어져 있기 일쑤다. 아무 데나 놓여 있어도 놀랍지 않다. 나도 좀 그렇다. 외출 전날 찾아서 준비해 두지 않은 옷은 입을 수 없다. 다음날 갑자기 비가 오거나 기온 차가 심해져도 바꿀 수 없다. 번번이 낭패하고 후회하면서도 입고 나면 다음 필요할 때까지 관심이 없어진다. 그들은 잔소리가 필요없다. 알아서 한다. 간섭받기를 무척 싫어한다. 대체로 성가시게 굴지 않는다. 아들 녀석도 잔소리가 필요치 않다. 별로 달라지지 않으니까. 미안한 표정으로 대꾸없이 들어주지만 미안할 일은 금방 또 일어난다. 밖에서도 저러면 제 엄마 욕 꽤 먹일 것 같은데, 그런 걱정은 어렸을 때 나도 좀 들었다. 작은아이 교복 셔츠는 이틀을 넘겨 입히면 빨래할 때 후회하거나 미워하게 된다. 아침마다 다려서 바꿔 입게 한다. 오늘도 그렇게 하고는, 비누질을 하고 싹싹 문질러서 세탁기에 넣었다. 웬일로 그들의 셔츠처럼 깨끗한가 했더니, 글쎄 이 녀석이 오늘 아침 새로 준비해놓은 걸 놔두고 어제 입었던 걸 또 입고 간 거다. 그대로 입고 간 아이나, 입지도 않은 옷을 세탁기에 집어넣은 나나 똑같다. 다행히 우리의 약점과 모순에 대해서도 웃을 수 있다. 우리는 좀 불편하긴 해도 그들만큼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계획이란 시간을 조정하는 방법이지만 우리에겐 이미 시간에 억압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이 갖는 건강한 공포와 조심성 덕분에 우리가 멸종하지 않을 것에 감사하며 우리의 호기심과 느긋함이 그들을 즐겁게 해줄 수도 있다고 믿는다.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강요하지 않겠다. 이것이 과연 넷만의 편 가르기일까. 세상 모든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잃지 않고 그들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고, 그들과의 협조적 관계를 위해 노력하며, 세상 모든 그들 또한 그럴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현실은 흑백이 아닌 여러 명암의 불확실한 구분임을 인정할 것이다. 윤 은 현 경일대 외래강사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2011년 02월 2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