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커니
겨울 상추 좀 먹어야겠다고 지푸라기를 덮어둔 산 아래밭에
상추 어루만지러 어머니 가시고
빵 딸기우유 사서 뒤따라 어머니 밟으신 길 어루만지며 가는데
농부 하나 밭둑에 우두커니 서 있다.
아무것도 없는 밭 하염없이 보고 있다.
머리 위로 까치 지나가다 똥을 찍 갈겨도 혹시 가슴에 깻잎 심어두어서
까치 똥 반가이 거두는 것인지
피하지 않은다.
무얼 보고 있는 것일까.
누굴 기다리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는 밭에서 서 있을 줄 알아야 농부인 것일까
내가 어머니에게 빵 우유 드리면서 손 한번 지그시 어루만져보는 것처럼
그도 뭔가 어루만지고 있긴 한데
통 모르겠다.
뭐 어쨋거나
달이 지구를 어루만지듯 우주가 허공을 어루만지듯
그것을 내가 볼 수 없듯이
뭘 어루만지고 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어루만지는 경지라면
나도 내 마음속에 든 사람 꺼내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고 서 있고 싶다
그냥 멀찍이 서서 겨울 밭처럼 다 비워질 때까지 그사람의 배경이 되는 것으로
나를 어루만지고 싶다
앞으로는
참을 수 없이 그대를 어루만지고 싶으면
어떤 길을 걷다가도 길 가운데 사뭇 서야겠다.
상추 한 아름 받쳐 들고 내려오며 보니 마른 풀도 사철나무도 농협창고도
지그시 지그시 오래 서 있었다
--박형권 ..
아무리 긴 시라도 이런 시는 한 번쯤 보여드리고 싶다.
이런 시 앞에서 우두커니 서 계시게 하고 싶다
말할 수 없는 간절한 그리움 속절없이 키워 마음에 담은 사람들.
우두커니 정말 우두커니 설 수밖에 없겠다.
'우두커니' 속에 얼마나 많은 견딤과 소원의 내용이 찰지게 다져졌는지 아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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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먼 당신 여기 나에게 우두커니일 것이다.
-- 이규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