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고 1년생의 사랑이야기..
주말엔 되도록 산에 올라보자 마음먹은 것이 2월부터이고 그런대로 잘 지키고 있다.
그저께 일요일 선산읍 비봉산엘 갔었다.
매화 산수유가 만발한 산풍경에 취해서
봄의 전령을 만난듯, 기쁜 마음으로 하산하는 길이었다.
비봉산 입구에는 충혼탑이 있는데 오를려면
계단이 족히 100개는 넘는다.
그 계단에서 두 여성이 지그재그로 오가며 메모지와 풍선을 붙이고 있었다.
뭔일인가 하여 다가가 보니
이런 쪽지들을 붙이고 있었다.
그냥 지나 칠수 없는 풍경이었다.ㅎㅎ
대학교 1학년쯤은 되어 보였는데,
물어보니 성숙한 외모와는 달리 고 1 이라고 했다.
남친도 고 1 인데 생일축하 깜짝쇼를 위해서
어제 남친에게 이별통보(몰레 카메라)를 했다고.
"다른 남친이 생겨서 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극약처방으로..
그리고 오늘 남친의 친구가 이곳으로 남친을 데리고 오기로 했다고 한다.
3시까지 오기로 했는데 늦어져서 더 늦게 오라고 했다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너가 그 남친을 훨씬 더 좋아하는 구나?"
"네.. "
서스럼 없는 사랑이었다..
발그런 소녀의 빰이 분홍빛 연정을 담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밤새 준비한 문구들과 풍선,,
고 1 이면 열여섯인가 열일곱인가.,
'여보'라는 말은
생경스러워서 정작 나는 '여보'라는 말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가진 나도 잘 못쓰는 것을 저들은 어찌 저리도 당당하게 쓸 수 있는지.
무엇이건 기꺼이 서슴없이 드러내는 모습이라니..
계단을 내려오다가 다시 돌아 보았다.
손을 흔들었더니 녀석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친구는 여전히 풍선을 불고 있었다.ㅎㅎ
이쪽 입구에서 남친이 글을 읽으며 올라가면
저 계단 끝 충혼탑 뒤에서 그녀가 '짠' 하고 나타날 거라고 한다.
하필 위령탑 뒤라니..
하기사 그 남친에겐 죽었다 살아난 내님일 터이니.. ㅎㅎ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공간이 없을 수도 있겠다.ㅎㅎ
둘에겐 이 공간이 잊을 수 없는 공간으로 한 페이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이 추억인데 젊은 저들은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훗날, 둘이서 함께 페이지를 넘길지 따로 넘겨볼 지는 몰라도
오늘 저렇게 사랑에 빠져있음을 맘껏 드러내는
저 젊음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저 나이때에 아름다운 것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고 절제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한번도 내 속내를 드러내는 상황을 가져 본 적이 없고,
나이 들어서도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잘못 길들여진 습관으로 지금도 그리 살고 있는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글쓰기로 가슴앓이나 자기 성찰을 승화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고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그러니 좋은 글 쓸일만이 남은 셈인데
한 번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어서 다만 그것이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