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김소월 <개벽>(1923.10) -
마음 속에 움직이는 감정은 논리적인 생각과 달라서
자기 스스로도 그 모습이나 크기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감정들은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행동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고,
어떤 때에는 뚜렷한 모습이 되어 밖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작품, 특히 앞의 두 연에서 우리는 바로 그러한 예를 본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라는 구절은 얼핏 생각하기에 시에나 있을 법한 이상한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시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경험이겠는가?
이 구절에서 '그립다'라는 말을 하려고 마음먹게 하는 것은 물론 마음 속에 있는 그리움이다.
즉, 그리움이 먼저 있고 그립다는 말이 나중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립다'라는 말을 할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 속에 고여 있던 그리움은 갑작스런 바람을 만난 물결처럼 출렁이며 일어난다.
즉, 그립다라는 말을 생각하는 순간 그 때까지 어렴풋하던 그리움은
새삼 절실하게 또렷한 모습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이런 문맥을 음미하건대 위의 작품에 나타난 그리움은
평소에 차마 입밖에 내어 말하지 못하였으면서
그리운 이가 있는 곳을 떠나는 발길을 떼어 놓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그냥 갈까 하다가 그래도 다시 한 번 더 돌아 보고픈 마음의 흔들림 속에 있다.
몇 마디 되지 않는 말로
이처럼 섬세하게 그리움과 망설임이 뒤섞인 상태를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머지 두 연은 주위의 풍경을 통해 그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암시해 준다.
셋째 연에는 산과 들을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까마귀가 등장한다.
까마귀들은 서산에 해가 진다고 지저귄다.
또 앞뒤의 강물은 작중 인물의 아쉬운 마음에는 아랑곳 없이 제 갈 길을 흐르며,
마치 어서 따라 오라고 부르는 듯이 여겨진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풍경은 하루 해가 저무는 시간의 쓸쓸함을 배경으로 하여
작중인물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더욱 절실하게 한다.
즉, 제 1, 2연이 마음속의 움직임을 노래한 데 비하여,
제 3, 4연은 이에 대비되는 바깥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간결한 구도와 말씨 가운데 '가는 길'의 머뭇거리는 그리움과 아쉬움은 더욱 잘 살아나고 있다.
-김흥규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 중에서
말을 하기 전엔 내 마음이어도 모를때가 있다.
그러다 말을 하면서, 어렴풋, 잠재되었던 무엇이 정리 되고 확인될 때가 있다.
어떤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일에서야 그럴 일이 없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어떤 '경계'에 섰을 때가 주로 그런것 같다.
경계,, 이런 경계에서 나온 말들은 순식간에 물이랑을 만들기도 한다..
바람만난 물결처럼 그렇게 울컥, 떨림인지 설렘인지
하루 이틀 사흘, 혹은세월이 한참 흐른뒤에도 잔이랑으로 남는 말,
바람을 품은 말이 있다.
'가는 길' 이라면
내가 님보고 싶어갈려고 하는 길인지.
나 만나고 가는 님을 보내는 길인지
산의 까마귀, 강물도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어쩔까, 님에게 가 있는 마음은 빈들녘만 바라고 섰다..
해거름 들녘에서면 바람이 좋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