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따라온 강남..

구름뜰 2011. 8. 4. 13:56

 

 

 

이사를 했다.

한 곳에서,  요 조망 좋은 집에서 십 오년을 살았다.

이 풍경때문에 다른 동네로 이사가는 건 생각도 못했다.

멀리 금오산이 한눈에 들고 앞동산은 나즈막해서 눈높이로 든다.

거실에 앉으면 초록병풍을 펼쳐 놓은 듯하고 사철 달라지는 달력같은 풍경이었다.

 

 

이사하기 전날 마지막 일몰 무렵이다.

아무 조건 없이 사철 만족감을 주었던 곳,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고 누린 자연이다.

 

이른 봄  파릇한 새싹시절부터, 가을 특히 겨울,  간밤에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한폭의 산수화를 하늘로부터 선물 받는 기분까지.

앞동산을 우리집 정원이라 여기며 

우리 가족만의 소나무도 지정해 두고 즐기던 곳이다.

 

 

이사는 이번에 한 것이 세번째인데.

두번째까지만 해도 동생네와 남편의 지인들이 도와주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포장이사는 처음이다.

아침 일곱시도 안된 시간,

약속된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르다 싶은 시간에,

장정 다섯명과 아주머니 한분이 오셨다

 

"이제부터 신발 신고 다닙니다."

남편과 아들은 선잠깨 주섬주섬 옷부터 입고,, 

곧 불어닥칠 태풍예고라도 들은듯 스피드하게 진행되었다.

제일 먼저 버릴가구들을 매직으로 체크했다.

나는 멍하니 섰다가 아차 싶어 카메라 가방을 찾아 

겨우 요 사진 한장 찍은 것이 다다. ㅎㅎ

 

왈츠리듬처럼 리드미컬한 몸놀림! 

멀뚱히 서서 물어오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요. 저렇게요,  등 

객처럼 쓰레기 봉투주변만 맴돌았다. 

안방, 아이방, 거실, 베란다 등 자기 구역을 정해서 꾸렸다.

그렇게 두어시간 남짓 작업을 했다. 

 

 

 

사다리가 올라오고,

하나둘 그렇게 익숙한 우리집 짐들이 내려왔다. 

화분하나, 책 한권까지 빠짐없이..

 

 

 

 

전우익 선생님의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책엔가 어디 보면, 

우리 살아가는 모습이 '죽으라고 사들이고  죽으라고 버린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지난 3-4주간 나는 집안 살림들을 다 들춰보는 시간을 가졌다.

버릴것들을 골라내는 작업이었다.ㅎㅎ

 

 

나는 책말고는 무엇을 꼭 갖고 싶다 그런 욕구랄까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 줄 알았다. 한데.. ㅎㅎ 

이번 짐정리를 통해 구메구메 싸매둔것 같은

욕심보따리를 비우는 일로 시간을 거진 다 보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홀가분해지는 과정인지. ㅋㅋ

 

다람쥐가 도토리만 보면 물어다 묻는 바람에

나중에 어디다 뒀는지도 몰라 여기저기서 새싹이 난다고 하더만,

내가 그짝이었다.

이불을 비롯한 옷가지며, 그릇류, 언제 쓸지 기약도 없는 것들까지.

아이들 어릴적 사용했던 크레파스와 물감 악기류 등

아귀아귀 미련더미에 더케앉은 마음들까지 싹삭 비워내는 후련함이니.. 

 

 

살다가,,

확~~털어버리고 싶은 것이 많을땐

거처를 옮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지 모르겠다.ㅎㅎ

 

법정스님이 출가를 작정하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제일 걸리는 것이 책이었다고 한다.

책욕심이 많아, 빌려보지도 빌려주지도 않는 나는 

좋은 책이 있으면 바로 사 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거실, 주방, 아이방, 할것없이 책꽃이마다

수납할 곳이 없도록 책만 늘어났다.

이책들을 한곳에 꽂을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늘 있었고,

이번 이사를  결심하게된 한가지 동기도 된다. 

 

또 한 가지는 친한 이웃사촌들 때문이다.

도원결의 맺듯 형제애를 맺었는데.

세팀중 한 팀이 올해 초 먼저 입주를 하고 또 한팀, 뒤이어 우리까지.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세가족이 한 아파트에서 살다가

다시 이곳 한 아파트로 입주를 했다.

처음엔 남자들끼리 친해진 사이지만, 지금은 아내들이 더 친밀해진 사이다

 

 

 

이사한 첫 아침풍경이다.

먹구름이 금오산으로  내려앉기 직전이었는데

이날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바로 앞 어제까지 살았던 아파트와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가 한눈에 든다.

이사라야 한 동네안에서 움직이는 일이고,

마트도 같은 곳을 사용하는 반경이다.

 

 

 

 

마음 통하는 이웃이 있어 기쁜일 슬픈일 함께 나누니

힘든일은 반으로 줄고 기쁨은 배가 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따뜻한 기류가 흐르는 일,

그것이 일상을 얼마나 여유롭고 풍족하게 만드는지,

새삼 실감하는 날들이다.

 

사춘기 소년소녀도 아니고 이 나이에.

'나도 강남' 할 수있도록 끌어 당기는

내외없이 친한 이웃이 있다는 건 정말 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