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먼저 손내미는 일..

구름뜰 2011. 9. 6. 10:07

 

 

 

"달좋아요 근처에 왔다가..."

어젯밤 저녁 아홉시쯤 되었을까, 이런 문자가 왔다. 낯선번호다 이를 어쩔까.

한창 재밌게 보던 책이 있던 터였는데 일단 덮어두고 창문을 열었다.

달이 서늘한 밤공간에 비추는 조명등처럼, 그 빛에 밤마실가기 딱 좋은  풍경을 하고 있었다. 

누구일까.. '달은  좋은데 뉘신지요?' 라고 물어볼까.  잠깐 동안 이럴까 저럴까 하는데. 전화가 왔다. 

"운동왔어요. 지날때마다 생각났는데 오늘 달 때문에 용기냈어요."

 

아파트에서  500미터 남짓 거리에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는

인근사람들에서부터  왕복 두어시간 걸리는 곳에서도 야간산책겸 운동을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에는 보행자가 거의 없는 저수지가는 길이 해만 지고 나면, 특히 여름밤이면 

넘치는 인파로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저수지 풍광도 좋지만, 저수지 가는길이 전형적인 농촌풍경이다.

도로를 경계로 한쪽은 산이고 건너편은 논밭이 펼쳐져 있다. 

그 논밭너머 개울이 흐르고 마주보는 야트막한 산 아래로 집들이 몇 채 들어서 있다. 

개울은 수량은 많지 않지만 저수지로 흘러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로변 인도보다,

논과 개울을 경계로 한 들길을 애용한다. 

개구리 울음소리 가득한 봄밤부터 쑥쑥자라는 벼들을 보다보면 어느새 연노랑에서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황금들녘풍경까지. 시골정취가 그대로인 곳이다. 

 

운동코스고 두어시간 걸리지만 자주 왔는데 오늘 용기를 냈노라며 해맑게 웃는그녀!

매주 보는 이이고 나보다는 너댓살은 어린 그녀가 덥석 손을 내밀었다.

마음은 읽히던 그녀가 내게 달을 핑계삼아 손 내민 밤 이었다. ㅎㅎ

 

사람과 사람사이 참 묘하다. 나는 누가 좋으면 좋은것으로 족했지,

먼저 손 내밀거나 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좋게보면 담백하고 어찌보면 매정한, 

인정미가 별로 없는 그런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종종 가까이 가기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건만,

가까이도 멀지도 않는 경계, 서운할것도 원망스러울것도 없는 그 경계에 서는 것에

익숙했고 그 선을 지켜왔던것 같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고, 굳이  관계망까지 형성 고리를 만들고, 

그에서 오는 부담감에서 놓여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선지 맘에 드는 사람들과의 관계만 원할히 해온것 같고,

그 만큼 다른 부분은 등한시한것 같다.  

 

공적인 일로 만나는 이들과는 사적인건 절대사양, 내가 할 일만 하고나면 그만이라는,

극적이었고 이기적이었으며 인간미 좀 없었던 것 같다. ㅎ ㅎ

내가 좋으면 한없이 좋고, 싫은건 아닌건 절대로 하지 않았던 고약함까지..

 

누가 내게 손 내밀면 이런 마음이 된다는 것을.

어리지만 손 내민 그녀가 이뻤고 친밀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녀를 보면서 '나도 손 좀 내밀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손 잡는일, 따뜻한 체온을 느끼기에 가장 쉬운 이일에

나는 그동안 왜이리 서툴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