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
옛 애인이 한 밤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위를 해본 적이 있느냐
나는 가끔 한다고 그랬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면서 하느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벌 나비를 생각해야만 봉오리가 열겠니
되물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얼레지....
남해 금산 잔설이 남아 있던 둔덕에
딴딴한 흙을 뚫고 여린 꽃대를 피워내던
얼레지꽃이 생각났습니다.
꽃대에 깃드는 햇살의 감촉
해토머리 습기가 잔뿌리 간질이는
오랜 그리움이 내 절망을 돋아나게 했습니다.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래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
대궁속의 격정이 바람을 만들어
봐, 두 다리가 풀잎 처럼 눕잖니?
쓰러뜨려 눕힐 상대가 없어도
얼레지는 얼레지
참숯 처럼 뜨거워집니다
- 김선우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비 2000
대궁속의 격정이 바람을 만들 듯,
사람도,
혼자로도 족한 뜨거움 있지요.
꼭 대상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지요.
바람을 향한 그리움이지만
내 안에 바람도 있지요.
그래서 바람을 향한 그리움은
곧 나를 향한 그리움인지도 모릅니다.
눕힐 상대 없어도, 먼저 눕고 먼저 출렁이는
누가 먼저인것이 중요하지 않은 그런 그리움..
말입니다.
어제 산에 갔다가 모여살기 좋아하는 여뀌를 만났습니다
습기를 좋아해서 도랑가 같은곳에 가면 볼 수 있는데
산 정상에 군락지어 피어 있더군요.
볼 때마다 예쁜 꽃색에 반합니다.
꽃인지 열매인지, 저 혼자 피면 눈에도 잘 띄지 않을만큼 작은데
여럿이 모여사니 이렇게 볼때마다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마디가 있어서 관절처럼 똑 부러지게 꺽을 수 있는데
집에 도착해 보니 완전 녹초가 되어서 형편무인지경. ㅎㅎ
얼른 물컵에다 꽃아 두었더랬습니다.
끊어졌던 숨결이 다시 이어진듯 이리도 곱고 싱싱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죽었다 살아난 셈 인데.. ㅋㅋ
꽃에게 물은 심장인가 봅니다.
작고 여리고 소박한 것들, 사람으로 치면 착하고 아름다운 것들,
보기만 해도 좋아지는 대상들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지요..
대상을 향한 마음은 교감이며 닮아가는 과정 같습니다.
작고 여린것을 보면서 거칠거나 욕심, 욕망같은 것들은 잠시 잊는것처럼,
사람들이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풀을 보듯, 나무를 보듯, 꽃을 보듯이
그렇게 자연물을 닮은 사람들 많다면 좋겠습니다.
어제 만난 여뀌처럼 오늘은
들국화도 만나고, 밤나무도 만나고,
그러다 잘 생긴 소나무 만나거들랑
따신! 차 한잔 하자고 청해도 보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