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앵두
구름뜰
2011. 10. 7. 08:54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 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브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을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 고영민
앵두라는 시제 하나 없이 빨갛게 탐스런 앵두를 한껏 그려내셨다.
역시 고영민씨의 詩다.
짤 씌어진 시는 이런 시라고, 교수님이 추천해 주셨던 시다.
도시의 골목길, 농촌의 골목길까지
부르면,
부르지 않아도 수시로 쒱~~ 스쳐가는,
엔돌핀같은 명랑한 기운 한조각씩 날려주시고 가시는
싱싱하고 탱탱한.
어디로 가시는 지 언제나 쒱~~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그녀의 스쿠터가
지금은 내게로 오고 있는 것이다.
풀많은 내 마당에서
가랑이를 오므리고 스쿠터를 타고 올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왔다.
스쿠터를 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