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참 빨랐지 그 양반

구름뜰 2011. 10. 26. 09:10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 자 물어본 게 단 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 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쏠렸던가 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이게 이녘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꽃무늬 월남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녔냐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 순간에 끝장나다니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 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 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 이정록

 

 

어머님 말씀

만으로 시 한편 완성하셨다.

부모님들은 대체로 그때 그 이야기 물으면 애국가 4절까지 부르는 것처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플레이 버튼 누른것처럼...

그래서 가끔 어머님 살아계실적 무용담 같은 거 알면서도 묻곤 했었다. 

그러면 좀전의 고단함이나 일상의 무료함 금방 잊으셨었다.

이야기속으로 빠져드는 모습.

백투더퓨처가 바로되는 순수함,

'어머니가 하고 싶은 얘기' 무얼까 생각해 보는것도 효도아닐까.

 

리얼리티야 살리셨겠지만

이정록 시인의 어머님은 시인보다 더 진국!! 같다.

이 시인이 장남이시니

혹여 그 때 그 밀밭의 결실이 아닌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