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신영복 기사를 읽고..똘레랑스, 그리고 햇살에 대하여..

구름뜰 2011. 12. 13. 10:07

 

 

 

눈부신 아침이다. 커피잔을 들고 햇살쪽으로 다가가 본다.

창문을 연다, 쌩한 공기가 실내온도와 족히 20도 정도는 차이  날 것 같다.

손을 대어보니 바깥 유리는 제법 찼지만 안쪽 것은 찬기운이 거의 없다.

사물의 경계도 面에 따라서 이렇게 다르다.

햇살만 쬔다면 창을 열지 않고 겨울을 인식하지 않고 본다면

창밖 냉기는 실감할 수 없는 햇살이다. 

 

이 시대 산 지성인 신영복 선생님의 육성이 느껴지는 기사를 읽었다.

(앞 페이지 희망의 인문학-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선생님이 근대성의 일면이라고 한 좌, 우, 그리고 경계!

그런 것들이 소통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독존을 위한 것이라면,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는 단절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다면성의 사회다.

적당한 인습과 순응력, 확실한 목표의식의 발로가 아닌 가치추구!는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어떤 명분이, 예를 들어서 살린다는 명분이 실상은

그 치열함만큼 죽이는 우를 범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경계조차도 면에 따라 다르니 경계도 경계해야 하니,

좌 우는 말해 무엇하리.

 

선생님이 말씀하신, "좌 우가 아니라 조금 불편하지만 뭔가

한 단계 새롭게 구성하자는 가치지향적 공존"

"가치를 지향하면서 따뜻하게 지키자"는 이야기가 공감 간다.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똘레랑스"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어로 '관용'이라는 뜻이다.

관용이란 '배타적 인정 약속'으로 내가 당신을 인정한다는 뜻인데. 

이 사회에는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고, 

관용(배타적 인정 약속)은 강한자가 약한자에게  먼저 베풀어야 하는 덕목이다.

약한자야 저절로 주눅들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셈이니,

강한자가  먼저 인정 받아야 잘 돌아가는 관계라는 것이다..

 

부부간에도 강압적으로 찍어 누른 상대에게 받는 인정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먼저 인정해주어야만 그 아내에게서 참인정을 받는 다는 것이다.

똘레랑스의 최종 목적은  '자기 자신이 인정받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도  "내가 당신을 인정합니다"라는 말의 다름 아닐 것이다.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겨울을 인식하지 못하고 보는 햇살들이 얼마나 많을까 만은,

신문지 한 장 크기의 햇살 때문에 죽을 수 없었다던,

내일의 햇살이 사는 이유가 되었던 것처럼,

겨울을 배제하더라도 햇살은 그 따뜻함만으로 이미 사랑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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