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고광환 연구

구름뜰 2011. 12. 24. 09:50

 

 

 

 우리 학교 행정실 고광환 주사는 의성 단밀 위중마을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내가 볼 때 그는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 중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의인이다. 가정을 살피는 일도, 자녀를 키우는 일도, 일을 대하는 자세도 나보다 한 수 위다. 11월 하순 어느 날 찬바람이 몰아치는데. 아침 일찍부터 사다리를 걸치고 모과를 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대단히 아름다웠으나, 모과를 따는 일은 나와 같이 근무를 시작한 칠월부터 지난 다섯달 동안 그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다. 고주사님, 그거, 따지 마세요. 빈 가지에 환하게 내건 등불을 왜 끄십니까. 그거 다 따면 학교가 어두워집니다. 게면쩍게 웃으며, 아, 교장 선생님, 이 등불 때문에 너무 밝아서요. 이제 그만 따도 되겠습니다. 하면서 사다리에서 내려 왔다. 말하자면 이 사나이는 농부이자 공무원인데, 포도철이 되면 포도를, 사과철이 되면 사과를 학교에 가져와서 냉장고를 채우는 것이다. 빈 박스에 지금껏 딴 모과를 잔뜩 담아 들고 내 곁으로 오는데, 그 등불들이 하나도 빛을 잃지 않고 이 사람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는 것이었다. 참 아름답게 늙어가는 초로의 한 사내가 지금 내 곁에 있다.

- 김선굉

 

 

 

 

지지난 달이었던가 인동고등학교에 선생님 뵈러 갔을 때, 단밀을 떠나왔지만 여전히 고광환은 맛있는 농작물들을 보내온다고 하셨다. 나무도 보내오고 꽃도 보내온다고.. 자신의 주변이야기를 시속으로 끌어들이는 선생님만의 특이한 기법은 '시적영토'를 확장해가는 '등기시' 쓰기라고 하셨는데 예를 들어서 탑리시를 쓰면 그 탑이 내 탑으로 등기 된다는 얘기셨고 전 지구를 내것으로 만들어가라고 조언 해 주셨다.

 

사람도 마찬가지인지 선생님 시에는 주변인들의 실명이 그대로 거론되는데. 이 또한 내 사람화 과정 아닐까 싶다. ㅎㅎㅎ  퍽이나 인상깊은 몇 안되는 사람중 한명이라며 고광환을 소개해 주셨었다. "등불이 너무 밝아서"라고 교장선생님의 부드러운 질책을 눙치는 모습이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