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책, 책, 책, 책을 보다가..

구름뜰 2011. 12. 26. 09:18

 

 

유몽인(1559~ 1623)의 <어유야담>에는 이런 시가 실려있다.

한 사나이가 길을 가다가 나귀를 타고 가는 미인을 만났다.

선녀가 적강한 듯 아름다운 모습에 그는 그만 발길이 얼어붙었다.

연정의 불길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는 즉석에서 시를 써서 그녀에게 보냈다.

 

마음은 미인 따라가고 있는데

이 몸은 부질없이 문 기대섰소.

 

넋은 이미 그대에게 빼앗겨버리고 나는 빈 몸뚱이만 남아 문에 기대섰노라는 애교 섞인 푸념이었다.

그녀가 답장을 보내왔다.

 

노새는 짐 무겁다 투덜대는데

그대 마음 그 위에 또 얹혔으니.

 

그녀의 대답은 아무래도 뚱단지같다. 당신이 내 마음을 온통 가져가버렸으니 책임지라는 말에

그녀는 온통 나귀 걱정만 한다. 늙은 나귀는 등에 태운 미인도 무겁다고 연신 가쁜 숨을 씩씩 몰아쉰다.

그런데 여기에 한 사람의 넋을 더 얹었으니 나귀만 죽어나게 생겼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마음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녀의 대답은 기실 '나를 향한 그대의 마음을 접수했노라'는 의미다

그대의 눈길에 내 마음도 철렁 내려앉았고, 그 내려앉은 무게만큼

노새만 더 무거워 괴롭겠다는 멋들어진 응수이다.

일상적인 예상을 빗겨가는 이러한 비약에는 참으로 사람을 미혹케 하는 예술적 매력이 넘쳐흐른다.

글자는 스무자(한자)에 지나지 않은데,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감정과 씩식대는 나귀의 숨소리,

그와 함게 커져가는 두 사람의 맥박 소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지 않은가.

 

 

정민 <한시미학산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소통이나 공감에도 격이 있다.

미인의 응수가 나그네보다 한 수 위다.

언뜻 보면 동문서답 같은, 퇴짜 맞은 것 같은,ㅎㅎ

정민선생님의 풀이가 재밌다. 

 

한시의 매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누구든 한시를 접하기 쉽도록  

풀이해 주어서 한시 맛보기에는 그만 인 책이다.  

짜투리 시간 날 때마다 손이 가는 데, 볼 때마다  그 맛에 반하고, 멋에 취한다.

책이 주는 즐거움, 이덕무는 자신을 일러 '책만읽는 바보(간서치)'라고 했다..

간서치는 방안에서 겨울 햇살을 따라가면서 책을 읽는 다고 했던가.

햇살 피해가면서!! ㅋㅋ엄동설한에는 간서치로 지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ㅎㅎ

두어달 만이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