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을 보다가,,
사는 일이
사람을 만나거나 이 길 저 길 걷는 길이지만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걸은 길은 빙산의 일각
나머지 빙산은
내가 만나지 않은 사람들 속에 있고
걷지 못할 길 위에 있고 북극에 있고 남극에 있어
나는 모른다
문득 발 앞을 막아서는
노란 민들레꽃
또한 가 닿을 수 없는
나의 바깥
- 나의 바깥,
- 김영미
거실 창쪽에 세워둔 벤자민이 한쪽 가지만 기형적으로 뻗어가며 자라고 있다.
벽쪽은 공간이 없어서 인지, 한 줄기에서 난 가지들인데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지난 어느날 잘 자라는 싹이 보여서 내가 화분방향을 살짝 틀어준 것 같긴하지만,
짝짓기 끝나고 해산하는 동물들처럼 배란기간이 있는 건지.
아무때나 새순이 나는 것 같진 않고, 2~ 3주에 한 번씩 새잎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를 정도로 뻗어나간다.
가 닿을 곳이라도 있는 양,
빙산의 일각!
프로이트(정신분석학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실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는 다 가늠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이란 것이 변화시킬 수 있는 영역, 곧 가능성이라는 것이 무한하다는 반증이다.
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그 가능성과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빙산의 일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나머지 역량들 내 안에 숨겨진 역량들을 발견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쉬운 일일리 없다.
'왜 한쪽가지만 저리 자랄까' 싶어서 벽쪽 가지에 외상이라도 있나
오래전 처음가지를 뻣어나올 때 확인 했지만 멀쩡했었다.
왜 한 쪽만 자랄까?
그나마 내 머리로 얻은 대답은 벽을 인식한 나무가 그 쪽으로 뻗었다간
가지가 잘릴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안것 아닐까 싶다..ㅋㅋ
밖은 한겨울이지만 자신의 환경에 맞게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저 나무의 모습은 얼마나 영특한 모습인가.
하지만 양사방으로 조화롭게 뻗어간다면 지금의 기형적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을까..
싹만 보여도 거실창 중앙쪽으로 옳겨줄 용의가 내겐 있는데,
말해 주어야 할 것 같다. 말 안하면 모를 테니까..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는 새순 하나 틔워보면 어떨까.
이겨울 새순하나가 자꾸 내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