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첫사랑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김선우
바람이 불고
눈이 와도
수선스럽지 않겠다는
다짐이 애처롭습니다.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손내밀지 않겠다는
마음 뒷바라지가 애처롭습니다.
그래놓고는, 그래 놓고는
그대가 추락한다면
내가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쌓인 아기 받듯 온몸으로 받겠다는
여기서 받는것은 나이기도 하면서 당신이기도 하겠지요.
시의 은유나 함축은 이래서 아름답습니다.
어느땐 내가 되고 어느땐 당신이 되는 그 애매모한한 상징성
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 있지요.
하여 시읽기라도 열심히 할 밖에...^
입술
우리가 헤어진 지 오랜후에도 내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잊지 않겠지요. 오랜 세월 귀먹고 눈 멀어도 내 입술은 당신의 얼굴을 알아보겠지요. 입술은 그리워하기에 벌어져 있습니다. 그리움이 끝날때 까 지 닫히지 않습니다. 내 그리움이 크면 당신의 입술이 열리고 당신의 그리움이 크면 내 입술이 열립니다. 우리입술은 동시에 피고 지는 두개의 꽃나무 같습니다.
이성복 -<그 여름의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