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사마천

구름뜰 2012. 6. 7. 09:00

 

 

사마천(司馬遷) - 박경리(1926~2008)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부형(腐刑)을 당한 것이 그의 장년에 이르러서인데, 시는 어째서 그에게 사랑의 기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녀가, 그의 몸에 내린 저주를 연민했음이리라. 사랑해본 기억이야말로 거세당한 몸을 절망에 빠뜨렸을 테니까. 하지만 그 몸을 일으켜 세운 힘 또한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에게서, 그리고 악창을 벗고 일어선 욥에게서 희망을 구할 때 그러했듯이. 다시 사랑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그래서 다시는 사랑을 잊을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무언가 다른 것이 시작되었다. 한 남자는 홀로 앉아 오줌을 지리며 죽간에 새겼고, 한 여자는 가슴 하나를 암에 바치고 종이에 썼다. 잊을 수 없는 몸이 결국 역사가 되고 역사소설이 되지 않았던가. 그들이 붓으로 살려낸 인간의 수를 헤아리다 보면, 사랑의 기억은 사랑의 현재이고 미래인 것만 같다. 우리는 모두 사마천과 박경리의 진실 안에 살고 있다. 역사 속으로, 역사소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달리 어디로 갈 것인가.

-<이영광·시인> 

 

 

 

 

 전장에서 패전한 친구를 옹호하다 궁형(거세)을 당한 사마천, 그 당시 궁형은 죽음과 동격이었던지. 궁형을 당하느니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덜 치욕적으로 여겼다고 한다.

 

 하나 사마천에겐 그 어떤 치욕 앞에서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 사관이었던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었기에, 아버지 사마담은  "공자 이후 오백년 지나도록 춘추 뒤를 이은 시대를 기록할 사람이 없었다" 며 그 소임을  아들에게 넘겼다. 사마천은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지라도 하늘과 아버지로부터 받은 소임을 완수하고야 말리라"는 각오로 사기 집필에 임했다고 한다.

 

 인간의 의지(꿈)는 삶의 동력이다.. 궁형을 당한 몸이었기에 그는 역사적 사실들을 더욱 담담하게 집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정주는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사마천도 박경리도 그랬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키우는 건 팔할이 컴플렉스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