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우리 집에서 개를 세 마리 길렀다. 셋 다 수놈이어서 새끼가 없었다.
한 마리는 코커스패니얼이고 두 마리는 잡종 똥개인데 잡종 중 한 마리가 문제였다. 개면 개답게 짖고 떠들고 까불어야 하는데, 내 작업실 앞 히말라야 소나무 밑에서 사는 잡종 개는 개답지 않게 품위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끄러워하기도 하는데 자신이 동물인 게, 개인 게 부끄러운 듯이 보였다.
내가 밥을 주면서 두 눈을 쏘아보면 눈을 마주쳤다가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뿐만 아니라 내가 보는 데서는 절대로 밥을 먹지 않았다.
다른 두 마리는 국자로 밥을 퍼 넣기가 바쁘게 퍼 넣기도 힘들게 밥통에 머리를 들이밀고 먹기 시작하는데. 그 히말랴야 소나무 밑에 있는 잡종 개는 내가 밥을 밥통에 부어도 딴 데 쳐다보고 있다가 내가 없어져야 먹었다. 일부러 모퉁이를 돌아서 등나무 등걸 틈새로 머리를 조금 들이밀고 몰래 쳐다보면 밥을 먹고 있는 게 보인다. 내가 어떻게 하나 보려고 다가가면 먹다가도 중단하고 먼 곳을 본다, 밥 안 먹을 때 대낮에 일부러 찾아가서 욕을 한다.
"너는 네가 개인 게 창피하나? 뭔 죄를 져서 개로 태어났냐? 개면 개답게 살아야지. 웃기지 마라. 이 개놈아. 너는 그냥 갠데, 놀고 있네. 개면 개답게 개로서 살아라. 이 개야."
내가 이렇게 욕하면서 두 눈을 째려보면 꼭 꾸중 듣는 사람처럼 침묵한 채 시선을 아래쪽 한 곳에 고정하고서 움직이지 않고 듣는다. 나중에 내가 그 품위에 짓눌려 가만히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떠난다. 그 개는 틀림없이 전생에 사람, 그것도 꽤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어떤 애절한 사연으로 고난을 감수하고, 의리 때문에 죄를 눈뜨고 저지르고 그 대가로 개로 태어난 게 틀림없다. 품위 면에서 녀석은 개이지만 나보다 한 수 위다.
- 김점선, <점선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