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절은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원권 한 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 병원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시
반지하 연립의 스탠드 켠 한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그만큼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벽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 카피의 한 문장으로 똑 떨어지는 슴슴한 고독이 아니라
사람 사는 밑구녘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들 끌어안고 벼리고 달인 시
비평가 하나 녹이진 못해도
늙은 작부 뜨듯한 눈시울 적셔주는 시
구르고 구르다 어쩌다 당신 발 끝에 채이면
쩔렁! 하고 가끔식 소리내어 울 수 있는
나는 내 시가
동전처럼 닮아 질겨지면 좋겠다.
-최영미
최영미 시인이 쓴 시는 시란 정작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사는 밑구녘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들 끌어안고 벼리고 달인 시
시를 지도하는 교수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백화점이나 거리 쇼윈도의 깨끗하고 흠결 없는 것,
그런 인간미 없는 것들에서 시를 찾지 말라고
시는 후미진 골목 쓰레기 더미 같은 사람냄새 나는 곳에서 찾으라고,
대상을 볼때는 사물이든 사람이든 나를 낮추라고,
낮아지고 낮아져서 더 낮아 질 수 없도록 엎드려보라고
꽃 한송이도 그냥 보지말고
세밀하게 오래도록, 아침, 점심, 저녁, 새벽에도 가보라고
돌아보면 나는 시인들이 쓴 시만 좋아라하고는
정작 시를 위해서는 고개 한 번 숙인 일이 없다.
그러고선 시가 안되는 걸 더 부끄러 하는 것만 봐도
내게 시쓰기는 가당찮는 일임에 당연한 것이다.
자학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시 쓰기보다 시 살기부터 해야는게 답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