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봄밤

구름뜰 2012. 9. 20. 09:06

 

2012 미당 문학상 수상은 시인 권혁욱에게 또 다른 출발선이다. 그는 "시를 쓸 때 자극을 주는 것은 추억인 듯하다"고 말했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취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함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이다

그가 전 생애를걸고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드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

다시 직립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권혁웅(1967~)

 

 

 2012미당 문학상 당선작  

시는 유머와 슬픔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을 징징대지 않고 유쾌하게 풀고 싶었어요. 가난한 시절을 겪은 사람만이 쓸쓸함과 아픔이 묻어나는 유머를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시를 쓰게 하는 최초의 구절이 있다"고 했다. 감수성의 방아쇠를 당기듯, 마음에 드는 구절을 쓰면 시가 자신 안에서 떠오른다는 이야기다..

'봄밤'에서는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 놓은 거다'라는 구절이 시가 태어난 출발점이 됐다고.

 중앙일보 하현욱 기자 인터뷰기사 발췌.

 

'일상성을 뒤집는 섬뜩한 인식과 그것을 능청스럽게 풀어 내는 해학에서도 이 시의 미덕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는 심사평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