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시에 대한 각서

구름뜰 2012. 10. 5. 14:39

 

당신은 명절 다음 날의 적요한 햇빛, 부서진 연탄재와 삭은 탱자나무 가시, 당신은 녹슬어 헛도는 나사못, 거미줄에 남은 줄무뉘 나방의 날개, 아파트 담장 아래 서서히 바람 빠지는 테니스공, 당신은 넓이와 깊이, 크기와 무게가 없지만 그것들 바로 곁에, 바로 뒤에 있다 신문지 위에 한 손을 올려놓고 연필로 그리면 남는 공간, 손은 팔과 이어져 있기에 그림은 닫히지 않는다 당신이 흘러드는 것도 그런 곳이다. _이성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