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섞이고 있을 때
강가에 물고기 잡으러 가던 고양이를 친 트럭은
놀라서 엉덩이를 약간 씰룩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북으로 질주한다
숲으로 가던 토끼는 차바퀴가 몸 위를 지나갈 때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공기가 되어 가고 있다
흰 구름이 토끼 모양을 만들었다
집승들의 장례식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긴 차량 행렬이 곧 조문 행렬이었다
시체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도 소용없다
자동차가 질주할 때마다 태어나는 바람이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가족들은 멀리서 바라볼 뿐
시체라도 거두려고 하다간 줄초상 난다
장례식은 쉬 끝나지 않는다
며칠이고 자유로를 뒹굴면서
살점을 하나하나 내던지는 고양이 아닌 고양이
개 아닌 개 토끼 아닌 토끼인 채로 하루하루
하루하루 석양만이 얼굴을 붉히며 운다
남북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뒤섞이고 있을 때
출판단지 진입로에서도
살쾡이의 풍장이 열하루째 진행되고 있다.
-차창룡
도시적 고독에 관한 가설
고양이 한 마리
도로 위에 낙엽처럼 누워 있다
몸통이 네모나고 다리가 둥글게 말린
코끼리 같은 버스가
죽은 고양이 앞에 애도하듯 멈춰 있다
누군가 말한다
스키드 마크는
바퀴도 번민한다는 뜻이지
누군가 답한다
종점에서 바퀴는 울음을 터뜨릴 거야
새 시장은 계몽된 도시를 꿈꾸지만
시민들은 고독하고 또한 고독하다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이 그 증거다
멀리서 아련히 사이렌이 울린다
한때 그것은 독재자가 돋우는 공포의 심지였으나
이제는 맹인을 이끄는 치자꽃 향기처럼 서글프다
누군가 말한다
두고봐
종점에서 바퀴는 끝내 울음을 떠뜨리고 말거야
하루 또 하루
시민들은 고독하고 또한 고독하다
친구들과 죽은 자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이 그 증거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고양이 한 마리 또 한 마리
-심보선
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뒤섞이고 있을 때...
친구들과 죽은 자의 차이가 사라질 때...
타이어 마모도 때문에 앞바퀴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지가 한달쯤 지났다.
그때 정비공장에서 들여다 보고, 만져본 타이어 표면은 제 각각이었다.
가장자리와 중앙, 안쪽과 바깥쪽이 달랐고 위 아래가 달랐다.
발로치면 양각의 발뒤꿈치를 지나 오목한 발바닥, 그리고 발가락가락의 굴곡처럼.
나는 신기해서 어찌 같지 않느냐고 했더니 정비공장 총각 왈, "대부분 같지 않다"고.
한 번 더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말이다.
발 뒤꿈치와 발가락 닿는 면이 같을 수는 없으므로,
내가 여일한 마음으로 매 순간을 맞지 못하는 것 처럼,
끝내 종점에서는 울고 말았을 거라는 타이어!
이 문장이 그때 내가 들여다 본 타이어가 나를 잡는다.
지나온 풍장때문에, 오늘 나 대신 온 몸으로 맞았을 세상때문에
나는 잊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지만
너는 내가 지나온 길을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온몸으로.
어쩌면 지하 주차장에선 밤마다 타이어들이 묵언수행을 하거나
동병상련의 동료들과 밤을 새우는 위로의 시간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들은 밤마다 그 날의 곡을 끝내고,
아침이면 가야할 길 때문에 지나온 길이 추억이 되지 못하는 사람을 태우고
쌩~ 하고 달릴 수 있는지 모른다.
기러기 뱃속의 소화물들이 뒤 섞이는 동안,
멀쩡한 타이어 표면이 비포장 노면처럼 굴곡져 가는 동안만
우리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