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파문

구름뜰 2012. 12. 27. 09:02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아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이나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 집 처마 아래서 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에 주파수를 맞춰 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파문

 

 

좋은 시라고 해서 늘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시를 읽고 있는 것으로, 그래서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파문을 가만히 만지는 것으로 가슴에 일을 마쳐야 할 때가 있다. 그 결이 물잠자리 날개 같아서 자칫 잘못 집으면 바스러진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그 파문이 만드는 동그라미에 슬며시 밀리다가는 함께 무늬지는 마음을 느껴보자. 시란 말이나 글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거기 닿아서 무너지는 그 순간에 산다. 시는 쓰는 자와 쓰여지는 것, 읽혀지는 것과 읽는 자 사이에서 일어나고 스러지는 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뿐. 소유할 수 없다.

-장철문

 

 

 

살다가 출렁할때 있지요.

비가 내 안에 내리는 것 같은 날 말입니다.

그러다 그 파문이 잠잠해지면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요.

출렁은 파문을 닮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잦아든 수면은

단지 잔잔할 뿐이지요.

파문이 일었던 시간들이 있어서 수면은 더 깊고 잠잠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지난 여름 장마철이었던가.

비 자주 오던 날들이었어요

잠깐 비그친 사이에 샛강 연꽃을 보러 가고파서

장화도 없이 카메라를 들고 나섰는데

강에 도착하자마자 추적추적 비가 그치질 않았지요.

 

꽃은 귀하고 잎만 무성한 샛강

우산을 들고 한 시간 남짓 걸었는데.

그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수면위에 그려지는 파문이었고

파문도 사진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었습니다.

오늘 아침 이 시를 보니

그때 그 꽃대신 와 닿던 출렁거림이 생각납니다.

 

옆잎에 떨어지는 물방울과 수면위 방울 방울들

파문은 빗줄기 하나하나마다 끊임없이 만들고, 사라지고, 또 만들어내고,

파문은 파문을 덜어주며 파문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연꽃 대신 파문만 일으키던 파문이었는데요.

오늘 아침 그 파문이 권혁웅 시인의 파문과 잘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슴에 비가 내리는 날엔 출렁거려도 되는 날,

비의 크기만큼 깊이 만큼 출렁이십시요

당신에게 파문이 일거들랑 느끼십시요.

가슴에 비는 자주 내리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