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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사과할 용기 있나

구름뜰 2012. 12. 31. 08:57

 

문재인 후보는 3.6% 졌다. 자신이 2% 더 얻었으면 박근혜 후보 표가 2% 줄어들어 결국 0.4% 이겼을 것이다. 그가 이를 놓친 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선거에는 말없는 다수가 있다. 이들은 품성을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여긴다. 인권·예의·배려 같은 인간적 가치를 얼마나 잘 지키는지 조용히 보는 것이다. 문재인은 이 대목에서 졌다.

 문재인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막강한 후보였다. 그런 인물이 TV처럼 공개적인 곳에서 특정 개인을 공격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노무현 정권 때 있었다. 대통령이 공격하자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한강에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다.

 비극은 2004년 3월 11일 일어났다. 남 사장은 대통령 형에게 3000만원을 주고 사장 유임을 청탁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TV 생중계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

 남 사장은 TV를 보고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이름이 생방송에 나와 범죄자가 됐는데 어떻게 낯을 들고 살겠나. 내가 모든 걸 책임지고 가겠다.” 문재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 사건을 겪었다. 문재인은 나중에 노 대통령에게 남 사장 실명을 거론한 건 잘못이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매우 후회했다고 한다.

 실명 거론 이전에 대통령의 언급 자체가 근거 없는 것이라고 유족은 주장한다. 노 대통령이 자살하기 수개월 전 유족은 고소했다. 남 사장이 김해로 대통령 형을 찾아간 적도, 직접 돈을 건넨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문재인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근거 없이 당하는 억울함’을 생생히 목격했을 것이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어떠한 증거가 없이 단순한 제보를 가지고 했다. 감금하고 가해를 한 것은 옳지 않다.” 뒤늦게 나온 이런 고백은 정말이지 충격적이다. 이 고백에 따르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후보’가 근거도 없이 많은 국민이 보는 앞에서 28세 여성을 ‘피의자’로 몰아붙인 셈이다.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문재인은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른다. 당원들이 여직원 오피스텔을 봉쇄했을 때 문재인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어야 했다. “국정원 여직원이라고 해서 제보만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 건 부당합니다. 당원들에게 촉구합니다. 철수하세요. 그리고 경찰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이렇게 했으면 1%가 올랐을 것이다.

 수사 결과 여직원 컴퓨터에 비방 댓글 흔적이 없는 것으로 경찰이 발표했다. 문재인은 바로 수사결과를 인정하고 여직원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당에서 경찰을 비난해도 그는 부모를 찾아가 큰절로 사과했어야 했다. 그러면 또다시 1%가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로 갔다.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언론이 결탁해 정권을 연장하려 한다고 외쳤다. 그는 외계인이었다.

 이는 가장 문재인답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얼마나 많은 이가 억울함으로 고통 받는지 그는 잘 알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28세 미혼여성’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봉황 그림에 취했던 것이다. 이는 국가지도자는 차치하고 변호사 자격조차 의심스러운 행동이었다.

 지도자의 진면목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다. 설사 수십만 표를 얻지 못해도 ‘28세 여성의 인권’ 편에 섰다면 문재인에게는 100만 표가 왔을지 모른다. 말없는 다수는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 후보가 이 사건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았다. 근거도 없이 젊은 여성을 피의자로 몰아붙이는 대통령 후보를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재인은 여직원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에게 그런 용기가 있는지 많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 <김 진> 의 시시각각 중앙일보 12월 31일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치전문기자 )

 

 오늘자 중앙일보 기사 올려봅니다. 문재인은 이번 선거기간에 수 많은 말을 했는데. <김진 논설위원>이 꼬집은 이 기사는 문재인이 한 좋은 말, 좋은 생각 제쳐두고, 한가지 사례를 통해서 그 사람의 면목을 콕 지적한 글입니다, 예를 든 사례들이 논리적으로 타당해서 공감가는 기사입니다.

 

 사람의 진면목은 가치관에서 드러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혼을 앞둔 남녀가 정말 맞추어 봐야 할 건 가치관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거지요. 의식주 문제에서도, 어떤이는 못 먹어도 잘 입고 싶은 이가 있고, 반대로 잘 못 입어도 잘 먹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들은 가치관이 달라서 하는 일마다 상대의 눈에 거슬리겠지요. 그러나 가치관이 같다면 라면을 먹어도 행복하고, 낡은 옷을 입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윗글 서두에 선거에는 말없는 다수가 있고, 이들은 품성을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여기며, 인권, 예의 배려 같은 인간적 가치를 얼마나 잘 지키는지 조용히 본다고 했습니다. 문재인은 이대목에서 졌다고,

 

 살면서 수 많은 말을 합니다. 말! 곧 수많은 생각을 한다는 거지요. 모든 말은 생각을 통해서 드러나고, 아니야 내 생각이 아니었어 라고 얘기해도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내 생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그 말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었다면 아니 실언이었다면 사죄해야하고 그런 모습 또한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일수록, 많이 배웠거나 가진사람 그런 인식을 놓지 말아야 겠지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범부들에겐 덜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정현종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한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일 것이다. > 

 

 한 사람의 모습, 부서지기 쉬운 부서지기도 했을 그 마음, 그 총체적 오늘 앞에서,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 있다면 어떤 인식을 가져야 할까요. 본의 아니게 상처 주거나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밑바탕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내가 그에게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요. 원하는 것, 그것이 가치관일 수도 있고, 인식일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내 가치관이나 인식이 결국 내 상처를 만듭니다. 경계하고 두려워 해야 할 건 언제나 나 자신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