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사

0과 1사이

구름뜰 2013. 4. 12. 10:45

 

 
 
 
단단히 가지를 잠근 채 모진 추위를 버티던 나무에 연둣빛 새살이 올라왔습니다. 봄이네요, 봄이…. 우리 집 강아지 이름도 봄이입니다. 햇살이 따뜻하던 어느 날, 봄이가 이름처럼 살포시 우리 곁을 찾아왔지요. 봄이와 함께 지낸 세월이 벌써 5년. 봄이가 다른 강아지들을 보면 슬슬 피하는 걸 보면 아마도 자신이 반인(半人)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봄이가 세 살 정도 아이의 지능을 갖고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봄이는 단어뿐 아니라 문장 그리고 시제를 구분하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엄마랑 차 타고 병원에 갈까?’라고 물으면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합니다. 똑같은 문장에 끝을 ‘~갔었지?’로 바꾸면 불쾌한 추억이라도 있는 듯 기분 나쁜 표정을 짓습니다.

 

봄이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주로 눈과 귀와 꼬리를 사용해서입니다. 가령 우리 물음에 긍정을 나타낼 때는 커다란 눈을 크게 한번 감았다 뜹니다. 혹은 귀를 약간 뒤로 젖힌 채 꼬리를 탁탁 칩니다.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을 때는 갑자기 다가와 얼굴을 들이댄 채 우리 눈을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 싶으면 높이뛰기 선수처럼 펄쩍 뛰어오르지요.

 

봄이가 우리와 소통하는 방식은 2진법입니다. yes 아니면 no. 1 아니면 0입니다. 0.5도 없고 0.3도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yes와 no 사이에 수많은 경우가 존재합니다.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0.6도 있고, 0.2도 있습니다. 연속으로 이루어진 아날로그이지요. 그러나 봄이는 디지털입니다. 그렇거나 아니거나. 단 두 가지 경우입니다.

 

봄이와 함께 매주 한 번 등산을 가는 날은 봄이가 가장 기다리는 날입니다. 산을 오르며 맡는 흙냄새가 자신이 자연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느끼게라도 해주는 듯, 걸음걸이마저 흥에 겨워진 봄이가 연신 코로 흙을 킁킁거리며 우리와 호흡을 맞춰 산을 오릅니다.

 

산에 가는 날 봄이가 상황을 판단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엄마가 해가 뜬지 한참 지나서 일어난다.’ 봄이가 긴장을 합니다. 이진수의 첫 번째 자리에 불이 들어옵니다(1). 봄이가 기웃거리며 동정을 살피기 시작하다가 ‘엄마가 비누냄새를 풍기며 샤워하는 대신에 세면대에서 조용히 세수를 한다.’ 봄이의 눈빛이 번쩍거립니다. 두 번째 불이 들어옵니다(11). ‘엄마가 선크림을 얼굴에 바른다.’ 봄이가 부르르르 몸을 떱니다. 세 번째 불이 들어옵니다(111). ‘엄마가 등산갈 때 입는 바지를 갈아입는다.’ 봄이의 심장이 마구 쿵쾅거립니다. 네 번째 불이 들어옵니다(1111). ‘엄마가 모자를 쓴다.’ 봄이의 피가 거꾸로 솟구쳐 더 이상 흥분을 자제할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불이 들어옵니다(11111).

 

이진법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10진법처럼 자릿수마다 가중치를 가집니다. 1, 10, 100, 1000, 10000으로 높아지는 10진법 자리처럼 2진법의 자리도 자릿수마다 1, 2, 2×2, 2×2×2, 2×2×2×2로 높아집니다. 그러니까 봄이의 11111은 매번 yes가 될 때마다 가슴이 마구 뛰어 심장이 터질 만큼 커다란 숫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진수 11111을 10진수로 환산하면 1+2+4+8+16, 31이라는 수가 됩니다.

 

전자기기에서 정보의 저장과 처리에 사용되는 디지털 방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음성, 이미지, 문자 등의 정보를 전기신호의 on과 off, 즉 1과 0의 조합으로 저장하고 처리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봄이처럼 단순하고 원시적인 이진법 방식을 사용합니다. 다만 1 또는 0의 정보를 나타내는 하나의 비트가 8개가 모인 바이트를 한 단위로 킬로, 메가, 기가, 테트라 바이트까지 정보를 저장, 처리할 수 있게 되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첨단기기의 개발이 가능해졌습니다.

 

요즘 봄이가 우울합니다. 디지털신호의 조합으로 아날로그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봄이가 0.5나 0.6 같은, 날이 춥고 새로 이사 와서 등산을 할 상황이 안 되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것은 강아지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아날로그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도 같은 것을 보고 듣더라도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쪽으로만 이해하려 하니까요.

 

‘무한한 것은 우주와 인간의 어리석음이다’라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은 0과 1 사이에 무한대로 펼쳐진 숫자로 그 의미를 새겨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이 가기 전에 봄이와 등산 한 번 가야겠지요. 산비탈에 홀로 피어난 진달래를 만나고픈 봄이네요.

백옥경/구미과학관장 -[좋은생각 행복편지]매일신문

 

 

 

 

어제는 봄이네 집 집들이 날이었습니다. 봄이는 앉아있는 우리 사이로 들어와서 한사람 한사람 돌아다니며 눈을 맞춥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 같기도하고, 제 얘기 하고 있냐고 묻는것 같기도 하지만, 답답해 뵈지는 않는 그냥 낯선 사람들에 대한 인사 같기도 했지요.  뚫어지게 쳐다보며 눈을 크게 뜨거나 작게 움직일 때마다 긴 속눈썹이 오르내리고, 귀도 물음표로 느낌표로 몸으로 의문문을 잔뜩 던지더군요. ...3살 정도의 지능이라는데. 손길 가면 거부하지도 않고 엉덩이로 살짝 반응하고, 꼬리를 가볍게 흔들어 저도 좋다는 신호 주는걸 잊지 않더군요. 

 

봄이처럼 높이뛰기 한 번 힘차게 해 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