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시인과 소설가

구름뜰 2013. 4. 23. 21:31

 

 

어느 날 거나하게 취한 김동리가

서정주를 찾아가서

시를 한 편 썼다고 했다

시인은 뱁새눈을 뜨고 쳐다봤다

-어디 한번 보세나

김동리는 적어오진 않았다면서

한번 읊어 보겠다고 했다

시인은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다 읊기도 전에

시인은 무릎을 탁 쳤다

-기가 막히다! 절창이네 그랴!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단 말이제?

소설가가 헛기침을 했다

-'꽃이 피면'이 아니라 '꼬집히면' 이라네!

시인은 마늘쫑처럼 꼬부장하니 웃었다

-꼬집히면 벙어리도 운다고?

예끼! 이사람! 소설이나 쓰소

대추알처럼 취한 소설가가

상고머리를 갸우뚱했다

-와? 시가 안 됐노?

 

그 순간

시간이 딱 멈췄다

1930년 현대문학사 한 쪽이

막 형성되는 순간인 줄은 땅띔도 못하고

시인과 소설가는

밤샘을 하며

코가 비뚤어졌다

찰람찰람 술잔이 넘쳤다

-오탁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