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애인

구름뜰 2013. 8. 4. 06:54

 

 

 

님에게는 아까운 것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布施)를 배웠노라.

님께 보이자고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持戒)를 배웠노라.

님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인욕(忍辱)을 배웠노라.

천하에 많은 사람가운데
오직 님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精進)을 배웠노라.

자나 깨나 쉴 새 없이 님을 그리워하고
님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禪定)을 배웠노라.

내가 님의 품에 안길 때에
기쁨도 슬픔도 님과 나의 존재도 잊을 때에
거기서 나는 살바야(智慧)를 배웠노라.

인제 알았노라.
님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愛人)의 몸을 나툰
부처님이시라고

- 이광수

 

 

 

 

* 어제 금오산 돌담백숙에 갔다가 본 춘원 이광수의 '애인'이란 시다. '천재'지만 대표적 친일작가로 낙인 찍힌 작가, 그의 작품은 작품론에서 접근하기보다 작가론에서 먼저 선을 긋게 되는 슬픈 역사속인물이다. 스무살적 이 시를 본 적 있는데 '애인'인 줄은 몰랐다. 그냥 '육바라밀'을 노래한 시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어제 이 시를 보면서 '육바라밀'은 안 보이고 '애인'이라는 글자만 와 닿았다. 

 

 보시, 지계,인욕, 정진, 선정, 살비야(지혜)  불가에서 말하는 육바라밀이  어찌 사랑하는 일에만 해당될까. 살아가면서 관계에서 느끼는 모든 일들에서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농사일을 해도 그렇고, 공부를 해도 그렇고 글쓰기를 해도 그렇다. 글쓰기를 예로 든다면 어떨까 

 

보시 -  글쓰기의 기본 다독,  다작,  다상량이 필요하다. 

           즉 글을 위한 일에 쏟아 붓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계 - 어떻게든 잘 쓰고 싶은 , 몸도 마음도 그리 먹어야 하는 작업이다.

인욕 - 습작기에 흔히 경험하는 일인데 이런걸 글이라고 썼나 싶어서 부끄러워지고

         오그라 드는 시간도 있다. 스스로 자신이 검열관이 되어서 자신의 문장을 검열하는 것이다.

정진 - 그러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쓰야 한다. 

          시한 생각 이걸 보면 누가 모면 어떻게 생각할까 등       

          수 많은 방훼꾼이 생기지만 이 또한 그럴수록 쓰야 한다

선정 - 글쓰기 하나만 생각해야 한다. 쓰는데 도움 되는 일만 생각한다.

지혜 - 그러다 보면 어느새  조금 늘어 있다. 병아리 눈물만큼,,

 

 세상 일 육바라밀이 아닌것이 없겠다. 애인을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몸을 나투신 부처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주제다. 우리 살아가는 이 공간이 극락이고 천국이라는 얘기와 맞닿아 있다. 내 곁에 있는 사물이나 존재들이 이러한 역량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굳이 갈구할 필요가 있을까. 의심해 볼건 내 고정관념 뿐인 것이다. 의심하는 만큼 우리는 깨어 있을 수 있고 달라진 인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