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말 잇기
물고기가 처음 수면 위로 튀어오른 여름
여름 옥수수밭으로 쏟아지는 빗방울
빗방울을 맞으며 김을 매는 어머니
어머니를 태우고 밤길을 달리는 버스
버스에서 졸고 있는 어린 손잡이
손잡이에 매달려 간신히 흔들리는 누나의 노래
노래가 소용돌이치며 흘러다니는 개울가
개울가에서 혼자 물고기를 파묻는 소년
소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버지
아버지가 버스에 태워 보낸 도시의 가을
가을마다 고층빌딩이 쏟아내는 매연
매연 속에서 점점 엉켜가는 골목
골목에서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가락
손가락이 밤마다 기다리는 볼펜
볼펜이 풀지 못한 가족들의 숙제
숙제를 미루고 달아나는 하늘
하늘 쪽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마을
마을에서 가장 배고픈 유리창
유리창에서 병조각처럼 깨지는 불빛
(…)
자동차~차고~고수~수박~박하사탕~탕수육~육개장~장군~군무~무릎! 기다렸다는 듯 마지막 낱말을 재빨리 내려놓고 웃는 아이. 나중에 이런 시를 쓰게 될까. 과거와 현재의 삶이 말의 그물에서 대롱거리며 독특한 풍경 하나를 펼쳐낸다. 우리는 모두 말과 말을 이어 삶의 그물을 짜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한 말의 그물로 세계를 길어 올리는 방법에는 또 뭐가 있을까. 프랑스 요리사, 영국 경찰, 독일 엔지니어, 이탈리아 연인, 스위스 정치가를 불러 모아 협조를 구해내면 유럽이 천국이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 하나가 생각난다. 어떻게 짜이는가가 항상 문제이자 핵심이다. 프랑스 엔지니어, 영국 요리사, 독일 경찰, 이탈리아 정치가, 스위스 연인으로 구성되면 유럽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조재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