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신가요?
나이 50 줄에 국내 유명 여성지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 밀리언셀러(무지개의 원리)덕이다. 천생 총각인 나에게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어 면구스러울 때가 있다. 기자들은 단도직입적으로 "행복이 뭐냐?" 고 묻는다. 그들은 이렇게도 묻는다. "스스로 어떠신지요? 진짜 행복하세요? 책 보니까 고생도 많이 하셨던데 혹시 자신이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세요?" 나의 답은 한결같다 "나는 행복합니다. 지금도 행복합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지도 못하면서 '행복'에 대해 말하고 다니다면 그게 바로 사기꾼이지 않겠어요?" "정말 힐들 때가 있을 텐데요, 그럴 때도 행복하신가요?" "그럼요! 나는 그럴 때를 대비하여 이미 마음에 생각의 장치를 설치해놓았습니다."나는 행복할 의무가 있다. 왜냐? 그만큼 행복론을 강의하고 다녔으니까, 고로 행복은 내 의무이고 책임이다라고 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의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이 의무라는 말을, 말하자면 뒤집어서 쓰기 좋아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런 말을 잘 쓴다. "나는 잘될 의무가 있다." "나는 행복할 의무가 있다." 여기서의 '의무'는 우리가 부담을 느끼는 혹은 강박을 느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가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마치 영어에서 '~임에 틀림없다'와 같은 강한 짐작을 뜻하는 '머스트 비(must be)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기에 여기서의 의무는 항상 나의 확신이자 신념이며 기대다.
기자들의 질문은 끈질기다. 이쯤에서 멈춰주질 않는다. "그렇게 마음먹는다고 뜻대로 되나요? 그게 과연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그냥, 이유 없이, 무조건 행복하기로 선언하고 그대로 이행하면 됩니다. 오늘 하루 웃으면 되고, 수없이 부딪히는 선택의 순간에 '만족'을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실랑이에서 나는 단 한 치도 밀리고 싶지 않다. 미국의 영성심리학자 존 포웰은 자신의 세면대 거울 위에 문장 하나를 붙여놓고, 매일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읽었다고 한다. 이 문장이었다. "당신은 지금, 오늘 당신의 행복을 책임질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명제는 바로 "행복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그러니 누려라"다. 모든 것은 소유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그것을 보고 즐기는 사람의 것이다.
'누린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늘의 은혜를 훔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유 지향의 삶을 살면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 천장만 봐도 살지만, 존재 지향의 삶을 살면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며 살 수 있다. 조물주가 매달아놓으신 더 멋진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소유 지향의 삶을 살면 자신의 울타리 안 정원만 즐기지만 존재 지향의 삶을 살면 온 지구를 정원으로 즐길 수 있다.
요컨데 진정한 부는 소유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누리는 자의 것이다. 이 깨달음은 우리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준다. 왜 우리는 죽을 때까지 돈을 모아야 되고, 큰 집을 지어야 되고, 아등바등하며 인생을 허비해야 하는가. 따지고 보면,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허둥지둥 죽는 것이 숱한 이들이 걷는 코스가 아닌가. 그건 비극이다. 그러기에 아예 생각을 바꿔 지금 주어진 것을 누리라는 것이다.
J. 모리스의 <잠깐만요>에는 갠지스 강변에 살던 어부, 살림(Saoim)에 대한 전설이 실려 있다. 어느 날 밤, 살림은 고된 일과를 마치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기가 부자가 된다면 어떻게 할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작은 돌처럼 느껴지는 것들로 가득 찬 가죽주머니가 그의 발에 채였다. 그는 그 주머니 속에 든 돌을 물속으로 하나씩 던지면 말했다. "부자가 되면 난 큰 집에서 살거야." "하인들을 고용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을거야."
마지막 한 개의 돌이 남을때까지 그는 계속해서 던졌다. 살림이 마지막 돌을 손에 쥐고 들어올리자돌이 광선을 받아 번쩍였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그 돌들이 귀중한 보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어부는 가상의 부에 대해 헛된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손에 쥐고 있던 진짜 '부'를 내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이미 우리 손안에 가지고 있다.
행복한 사람은 '미래'를 위해 살지 않는다. '지금'이 바로 행복의 순간이다. '여기'가 바로 행복의 장소다. '지금 여기 (here and now)는 우리의 일상 생활을 의미한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평범한 것 일상적인 것들이 행복의 계기다. 사회에서, 또 가정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하는 그 순간이 그대를 위한 행복의 순간이다. 그것을 지겹게 생각하고 대충 끝내고 다른 즐거움을 좇겠다고 하면 그 즐거움을 파랑새처럼 영원히 붙잡을 수 없다.
잊지말자 그대의 '오늘'은 그대가 살아온 과거의 총결산 그대가 맞이할 미래의 담보다. 그대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그대의 과거와 미래를 죽일수도 있고 살릴수도 있다.
차동엽 신부-인천카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