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사랑을 선택하는 기준 1

구름뜰 2014. 1. 6. 19:21

 

 

 

 

 

이 책은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친구가 강권한 책이다.

동 저자의 심리치유 에세이 '사람풍경'이나 '천개의 공감'을 접한 터라 소설은 어떨가 궁금했다.

친구는 모티브 선상에서 봤을때 이 소설에서 심리 치유에세이가 확장된 것 같다고 했다.

 정신분석에 대한 작가의 역량에 호기심을 가진 독자로서 기대가 컸다.

 

세 권을 구입하여 두 권은 선물한 터였다.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징때문인지 에세이를 먼저 접해서 그런지 잘 읽혔다.

 

읽다가 접어둔 부분들, 혼자보기 아깝다 싶은 문장들을 올려본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해한 것을 자신들의 언어로 설명하고 자신들의 방편으로 해결책을 제시해요. 그중에서 이성적으로 납득할 만한 것. 그러면서도 교집합으로 가려낼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독신이라는 사실과 가슴에 쌓인 게 많아서 그렇다는 것, 결국 병이 마음에서 왔다는 거죠. 저는 이 작업이 제 신체적인 고통까지 직접 해결해줄 수 있다고는 기대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가슴속에 무엇이 억압되어 있는지 들여다보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해소하고 이런 일이 발하는 것을 막고 싶어요."

 

 

 

 스토리는 인혜와 세진의 이야기다.

세진은 이사 후 가위눌리는 불편감, 헛것이 보이는 무력감 등을 격는다.

신약과 양약까지 할 것은 다해보고 이상이 없다는 결과에도 불구하고다.

 심리적 무기력 상태와 정서적 공백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고 

스님, 법사, 지관, 풍수학자, 도교 수련자, 만신, 안수 집사 등등 많은 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신경정신과를 찾는다 그리고 집중적으로

한 열흘정도 이른 아침에 면담자를 통해 면담을 받게 된다.

 

 

 

 한 일주일, 간단하게 개인사를 훑으면서 새삼스러운 고통과 슬픔과 자기연민에 지배당하는 시간이 지났다.

 

 모든 신경증은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 고통, 외면하고 회피한 예전의 고통이 뒤에서 다가와 뒤통수를 치는 현상이라고 책에서 읽는 적은 있었다. 그럼에도 그토록 고스란히 감정이 되살아나는 일은 놀라울 뿐이었다. 내가 어떤 감정적 반응을 보일 때마다 면담자가 오 초 내지 십 초가량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이유도 그 감정을 다시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인 모양이었다.

 

 

 

'자기연민'이라는 감정!

어릴적 엄마에게 혼 났을 때, 즉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을때

 눈물과 함께 동반되는 감정이었다.

내가 불쌍해서 우는지 억울해서 우는지 모르지만 

어른이 되고도 종종 이런 감정을 경험했었다.

하지만 타자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을때

자기 자신에게도 의존하는 것 같은 '자기 연민'은 소멸되었다

 

 

 

 

 

 

 

 "사르트르가 그런 말을 했었죠. 창피하다는 느낌은 나를 타자화하는 것이다. 나를 대상화시켜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거죠."

"그것은 일차적인 방어 의식이죠."

 

 

  부모의 사랑 부재에 관해서는 르네 스피츠에 의해 기록된 것보다 더 확신을 주는 증거는 없다. 미국 남부의 한 고아원에서, 스피츠는 다른 사람들과의 정서적, 신체적 접촉을 받지 못했던 아흔일곱 명의 아동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관찰, 기록하였다. 기금 부족으로 삼 개월에서 세 살에 이르는 어린이들을 적절하게 돌보아줄 충분한 직원이 없었다. 간호사들이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먹이고 씻겼지만 엄마가 해주듯 안고 얼러주고 대화할 시간은 내지 못했다. 삼 개월 후부터 아이들은 비정상의 증후를 나타냈다. 식욕 상실, 수면 부족으로 인해 표정 없는 눈빛이 되어갔다. 오 개월 후에는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고통스럽고 뒤틀린 얼굴로 훌쩍훌쩍 울며 누워 있었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들어 올리면 공포로 악을 쓰며 울었다. 스물일곱 명이 첫해에 정서적 양육의 결핍으로 죽었다. 같은 이유로 이듬해에 일곱명이 더 사망하였다. 아흔일곱 명 중 단지 스물한 명만이 살아남았는데 그들 대부분이 중증의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

 

 

 인혜는 나르시시즘적으로 투사하면서 대리 만족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상대적인 상실감을 배가시킨다는 걸 몰랐다. 나중에 대리 만족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영원한 결핍에 대해 깨달았을 때 그 집에만 가면 왜 그토록 마음이 불편하고 몸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는지 이해했다.

 

 

 

'대리만족'이라는 감정이 상대적인 상실감을 배가시킨다는 사실

심리학적 견해이겠지만, 대리만족은 만족감을 증대시키는 줄로만 알았다.

 

 

 

 

 

 "몸 안의 슬픔이 자기를 알아달라고 몸을 아프게 하는 겁니다."

 

 무의식이 꿈, 언어, 신체적 증상 등 세가지 형태로 나타난다느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을 때 무의식의 언어화라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 짐작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말이 나오는 걸 들으면서, 그말을 하는 걸 그토록 힘들어 하는 자신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억압된 무의식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쉬었다. 화병이나 이명, 실명 같은 심인성 증상들이 그것이라 믿었다. 그렇지만 내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증상들, 이를테면 목에 돌멩이가 걸린 듯한 뻐근함,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통증, 명치가 뒤틀리는 아픔, 그것들이 모두 무의식이 표출되는 한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햇다. 무의식이라는 게 그토록 가까운 곳에서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니.

 

 

  "가슴에 쌓인 게 많아 그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많은 사람, 마음 바닥이 맑은 사람,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 앞으로도 불교 공부와 수행을 꾸준히 하면서 마음속에서 그것들을 녹여내야 합니다."

 

 "이렇게 얌전하게 생긴 사람 속에도 다 파도 타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나를 관하다 보면, 점차 내 마음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되면,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을 때가 찾아와요. 내가 모르고 있던 내 모습들이 나타나는데 내 속에 이렇게 추악한 게 있었던가 싶게 모멸스럽고 경악스럽고......, 그 고비를 넘어서야 합니다."

 

 "하루하루 사는 게 다 업을 닦는 일이고, 내 행동 하나하나가 다 수행이라고 생각하며 사세요. 인간 세간에 살면서 공부하는 게 산속에서 도 닦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다 내 업이라 생각하고 나와 함께 천수경 지장경 공부합시다."

 

 

스님(법사)에게 받은 처방이다.

세진은 나름의 전문가들을 만나서 정신적 허기에 연한 증상을 이해하고자 찾고자 한다.

그렇지만 모두에 쓴 문장처럼,

단지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저마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해한 것을

자신들의 언어로 설명하고 자신들의 방편으로 해결책을 제시할 뿐이다.

 

 

 

 

  "그 남자는 실제로 괜찮은 사람일지 몰라. 내가 믿을 수 없는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바로 너야. 우선 너의 존재를 바로 세우고 너 자신을 스스로 보살필 수 있어야 해. 재혼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혹시 너,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거니?"

 

 

 - 인혜는 자신이 어떤 오류에 빠져 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불행한 결혼 한 가운데 있을 때. 홀로 외로운 시간들을 견딜 때, 다른 사람을 만나면 모든게 달라질 거라 믿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만나서 그와 전인적인 관계를 맺고, 정서가 고양되고, 영혼이 성장하고, 그리하여 다른 관문을 지나면 곧바로 유토피아가 펼쳐지는, 그런 사랑의 환상을 꿈꾸었다. 세진은 그것을 깨부수는 단초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인혜는 먼저 자신을 똑바로 세우는 작업을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보고,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과 잘할 수 없는 일을 나누었다. 정직하게 자신에게 물어본 결과 한 가정을 가꾸는 주부로서의 역할은 인혜가 그다지 강렬하게 욕망하지 않는 일, 잘할 수 없는 일에 포함되었다. 남성에게 의존하여 아내로, 어머니로 살지 않는 여자의 삶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혜가 한자리에 든든히 뿌리 내린 나무가 되자 남자는 그 발치를 흐르는 강이거나, 강물에서 헤엄치는 송어거나, 무연히 스쳐가는 바람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삶도 그러해졌다.

 

 

 

심약한 인혜에게 세진이 날린 돌직구다.

이혜는 세진 일침을 통해서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인혜가 한 자리에 든든히 뿌리를 내렸을때

그에게 오는 남자들은 발치를 흐르는 강물이거나

강물에서 헤엄치는 송어이거나

무연히 스쳐가는 바람 같은 존재가 되었고

삶도 그러해졌다는 부분이 공감간다.

 

 

 

 

 

 인혜는 자신이 더 늦게 결혼했더라면, 성에 대한 지식이 조금 더 많은 상태에서 결혼했더라면 남편에게 다른 방식으로 대처했을 거라고 오래 후회했다. 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클리닉을 찾거나 함께 책이나 비디오를 보며 노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남편을 대할 때 더 많은 인내와 이해심을 발휘했을 것이다.

 - 남편이 난폭하게 변해갈 때 답답하고 부당했던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혜와 이혼한 남편은 성불능증 같은 것이 있었고 함께 소통하지 못했다.

 인혜는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했음을 이혼후에야 알게된다.

그리고 그가 만나게 된 사람중 한사람인 진웅도 전남편과 같은 증상이지만

진웅이 그 증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감까지 회복하도록 그녀는 그와 함께한다.

 

아이러니다.

우리 살아가는 모습도 이러한 아이러니가 어찌 없을까.

 

 

 "융이 말년에 그쪽으로 갔죠? 어쨌든, 그 책에서 다시 확인한 내용은 사탄이라는 존재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우연히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랫동안 외로웠던 사람들, 그리고 지급도 외로운 사람들에게 깃들인다는 거죠."

 " 나는 그 외로움에 한 가지 더 첨가하고 싶어요. 적개심, 적개심은 두가지 양상으로 나타나죠. 공격성이나 방어 의식."

 

 "친근한 관계가 형성되고 가까워진 다음에는 퇴행이 일어나야 해요. 오륙 세와 같은, 아이들이 소꿉장난으로 엄마아빠 놀이하는 수준까지 퇘행이 따라야 해요."

 

 

 내 사랑 불능의 원인은 내가 퇴행하지 못한다는 데 있는 듯하고, 내 퇴행 불능의 이유는 그 시절이 기억에서 지워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 삼 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이유도 퇴행 불능과 관련 있지 않을까 싶었다.

 

 두 성인이 만나 퇴행 없이 친근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한계가 삼 개월쯤 되지 않을까. 음악회나 영화관 가고, 문화와 예술에 관해 세미나나 하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말이다. 그러니까 사랑 불능을 치료하는 일은 퇴행 불능을 치유하는 것과 같은 일일 수도 있었다.

 

세진의 이야기다.

 

 

퇴행!! 하면 안되는 건줄 알았으니 이 나이에도. ㅎㅎ

이러니 책 좀 읽으면서 살일이다. ㅎㅎ

 

성인이어도 퇴행을 거치면 친밀해 진다는 말이 공감간다.

해변에서 '나 잡아 봐라' 라던지 투정이나 애교 등등 친밀해질려면 

퇴행을 거치라는 말이 지대로다.

 

퇴행은

그 사람 나만 아는 것 같은 느낌,

그 사람이 내게만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것 아닐까

퇴행을 못하는 것이 사랑 불능과 동격이라는 해석이 기막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노이로제이고, 아무것도 아닌말에 상처받는 것이 콤플렉스이듯, 그 사람이 선택하는 단어가 그 당사자의 상처였다. 그러고 보니 몇 가지 사례가 떠올랐다. 늘 '귀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 '무료하다'는 단어를 많이 쓰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바로 그 단어가 상처이겠구나 싶었다.

 

 

 "사랑받으려는 욕구와 유혹될 수 없는 성적 불능, 이것이 제 문제였어요. 도움을 청해놓고 도움받기를 거절하는 것과 같은 이유죠."

 

 어린 괴테는 '그런 식으로는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접시를 집어 던져 깨트리기 시작한다. 동생을 본 괴테가 동생에 대한 질투와 부모의 애정 갈구를 그런 식으로 드러냈다고 프로이트는 해석했다.

 

 

 "내가 지금 네게 음식을 덜어주는 행위도, 좀 전에 네게 선물을 준 행위도 다 같은 의미야, 내가 이만한 애정을 너에게 주니, 너도 나를 좀 사랑해줄래" 그런 뜻이더라. 더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선물을 할 때마다 상대방의 애정을 구걸하고 있었던 거야."

 

 이멜다의 구두나 재클린의 쇼핑벽도  목표지향적으로, 이성적으로 사느라고 억압해둔 감정과 무의식 영역의 욕망들이 그런 식으로 이성에게 복수하는 거래."

 

 "인체의 자연 치유력을 믿듯이, 마음의 영역에서도 그것을 기대하나 보지. 뭐."

 

 "결핍이 욕망을 낳고, 욕망이 행위를 낳는다잖아. 인간에게는 결핍이 곧 성취 동기이고, 생존 욕구이며, 추진력 아니니? 네가 말한 무의식의 구멍, 그것이 있기 때문에 삶에 추진력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결핍을 추진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못해. 그 결핍갑이 무의식 영역에 있는 병이기 때문에 자각하지도, 충족시키지도 못하는 것이지. 방법은 하나야. 그 구멍을 직면하고 넘어서는 거. 정신 분석은 그 일을 도와줘."

 

 

 

 

 

 

 화사함 뒤의 그늘, 화려함 뒤의 갈등, 평온함 뒤의 파괴까지. 그 모든 것이 삶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것을 받아들에게 되었다. 갈등이 있기에 그 다음의 화해가 더 아름답고, 적대감이 있기에 그 반대급부의 애정이 더 짙은 거라고.

 그런 인식에 도달하기까지 인혜에게 가장 큰 스승은 연애였다. 한 번씩 연애를 할 때마다 인혜는 자신의 추악함과 맞딱뜨리는 시간들을 보냈다.

 

 

 사랑은 날것인 자신과 직면하게 되는 가장 에누리 없는 방식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 번씩 자신의 추악함을 겪고 나면 그 증세가 많이 완화된다는 점이었다. 인혜가 더 많은 사랑을 해보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인지도 몰랐다. 사랑은 분명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아 가는 과정이고,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피나게 투쟁하는 일이고, 그것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아가 확장되는 것을 느끼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머물다 떠날 때마다 내면의 공간도 그만큼 넓어졌고 그 자리에 더 많은 빛과 바람이 드나들었다. 물론 다음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도 한결 쉬웠다.

 

 

이 책의 주제부분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한 번 만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 책의 주제로 봤을 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인혜의 예로만 들더라도 인혜가 좀 더 성숙했더라면 진웅의 경우처럼 함께 풀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보면 사랑이 인간의 전인전인 성숙도에 기여하는 측면을 높이사야 하지 않을까.

 너무 비약인가 싶기도 하다.

결혼전에 여러 사람을 만보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랑이 어찌 결혼전에만 있을까만

사랑을 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인혜는 처음부터 자신이 내부에 사랑에 대한 환상이 존재함을 알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전 존재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에로스와 리비도가 완벽하게 결합되고, 아이부터 노인의 영역에 이르는 정서를 마음대로 오가며, 그 위에서 정신적 성장, 정서적 고양, 영혼의 확장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인혜는 자신이 게임 같은 연애를 계속하는 진정하고도 내밀한 이유가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그 연애를 통해 사랑의 환상도 극복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진웅은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 치명적인 것을 인혜의 눈앞에 들이미는 셈이었다. 사랑의 환상도, 권력에 대한 욕망도, 모두 한번 넘어서보라고.

 

 인혜는 한 분야에서 극단에 닿을 정도로 치열하게 몰두하면 어떤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생 달리기만 한 사람, 평생 구두만 고친 사람, 그런 사람들은 한두 줄의 단순한 문장 안에 삶의 본질이나 인간에 대한 통찰을 담아낼 줄 알았다. 구두는 꼭 마누라예요. 발에 맞으면 편하지만 맞지 않으면 평생 애물단집니다. 바라톤은 인생하고 똑같아요. 편안한 지점도 있고 주저앉고 싶은 고비도  거죠.

 

 

 

 

진웅이 인혜를 통하여 성과 함께 자신감을 회복했을때 

인혜는 떠날때가 되었음을 직감하는 것이 1편의 마지막이다.

 

에로스와 리비도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

인혜의 '사랑을 선택하는 기준' 자기 초월을 위한 도전같기도 하다.

 

이 책은 인혜와 세진의 삶을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으로 나누어 놓은 듯 하다.

인혜의 방식이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내는 삶이라면

세진은 정신적인 영역을 중시하며 무의식에 억압된 것들을 하나하나

들춰내어 치유하는 과정을 밟는다.

겉으로 사회적으로 보기에 세진이 훨씬 더 완벽!해보이지만

과연 그렇다고만 할 수 없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책 어딘가에 이런 얘기가 있다

누군가 지나치게 예민하다면 그가 다른이보다 예민하게 태어난 것일까 하고

세진이 묻는 장면이다.

 그때 면담자는 화를 벌컥낸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된다는 메세지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우리는 제 성향에 맞게 살아가고 있다

어느 이 옳을 수도 그를수도 없다. 그냥 살아갈 뿐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우리는 섣불리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를 범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사랑을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이 둘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라는 것,

다 사랑을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나는 어느 순간도

언니같고 동생같다는 느낌을 가져보지 못했다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ㅎㅎ

 

친구는 2편이 더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