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누군가의 팬으로 산다는 것

구름뜰 2014. 3. 26. 09:46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여고 동창 SNS에서 30여 년 만에 만난 친구 얘기다. 여고시절 나의 ‘전도’로 좋아하게 된 모 가수를 지금까지 좋아한단다. 이젠 상대 가수도 자기를 알아보고 공연에 초청할 정도가 됐다고 했다. 며칠 후 TV 화면에 그 가수의 콘서트에 간, 이제는 중년 아줌마 팬이 된 내 친구의 얼굴이 잡혔다. 남편, 대학생 딸이 옆에 앉았다.

 또 다른 동창은 나를 원망했다. 내가 그때 “가수의 음악성은 보지 않고 얼굴만 밝힌다”고 나무랐던 모양이다. 요즘 나를 생각하면 웃기는 얘기다. “친구야, 나는 요즘 스타의 외모는 스타의 재능이라고 생각한단다. 어린 나의 잘못을 용서해주렴.” 이런 사과 글을 올렸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주요 키워드는 ‘팬질’이었다. 배우인 적도 있고 가수인 적도 있고, 드물게 시인인 적도 있었다. 심지어 드라마의 캐릭터에 빠지기도 했다. 요즘 팬들처럼 몰려다니며 팬클럽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그 ‘팬질’이라는 적성을 살려 문화부 기자가 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언가 나를 열광케 하는 압도적인 재능, 아름다움, 예술적인 경지에 이끌렸고 그게 곧 ‘팬심’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삶의 고비고비마다 그들에게 크게 위안받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김연아 동영상’이 떠오른다. 30대로 추정되는 여성 팬이 소치 올림픽에서 찍은 경기 영상이다. 하이라이트는 맨 뒷부분이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영상이 심하게 흔들린다. “아아악…흑흑흑…연아야 고마워…연아야 사랑해…아아악” 팬의 격한 절규와 흐느낌, 화면의 떨림이 한참 동안 이어진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팬이 올린 ‘엘사 제작기’도 유명하다. 직접 천을 뜯어다가 주인공 엘사의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사진을 찍었다. 일일이 바느질하고 구슬을 붙이는 엄청난 수작업이다. SNS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사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팬이 돼보지 않고서는 쉽게 알 수 없는 마음의 상태다. 무언가에 열광하되 보상을 바라지 않는, 내가 이만큼 사랑했으니 너도 이만큼 사랑하라는 ‘기브 앤 테이크’가 없는 관계다. 들인 시간과 돈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비자본주의적’ 관계이자,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이들끼리 연적이 되지 않는 특수한 관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타와 팬 사이 못지않게 팬끼리의 관계도 특별하다.

 일상 속 대중문화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제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현대인에게 새로운 정체성의 하나인 것 같다. ‘팬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현대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말이 돼가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팬에 대해 들은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말이다. “난, 다른 누구 아닌 나 자신, 내 인생의 팬이야.”
-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