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이 알려지자 비난 여론이 융단폭격처럼 쏟아졌다.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에다 여군을 고립 혹은 왕따시키는 수칙이라는 거다. 문제의 본질은 일부 지휘관들의 비뚤어진 성의식과 군 내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인데 이를 뜯어고치면 될 일이지 내외하는 수칙을 만들면 어떻게 함께 일하느냐고 반발한다. 게다가 남성 군인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여기는 듯한 뉘앙스 때문에 거부감이 더욱 커지는 경향도 있다.
이 수칙은 물론 단세포적이다. 21세기에 ‘남녀칠세부동석’과 같은 수칙으로 해결하려는 전근대적 방식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한데 나는 이 수칙에 찬성 한 표를 던진다. 군 내 성범죄 사건을 보면, 문제적 남성 군인들이 가진 단세포적이고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너무 승해서 이에 대응하는 대책도 단세포적이고 전근대적인 것이 오히려 먹힐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무리한 몇 조항에 ‘판단 유보’를 했던 이 수칙에 ‘찬성’으로 확 돌아서게 된 데는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이 톡톡히 한몫했다. TV 뉴스를 통해 3성 장군 출신 송 의원이 강원도 모 여단장 성범죄를 놓고 “오랫동안 외박을 못해…, 하사 아가씨가 옆에 아가씨한테…”라고 말하는 광경을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순간 피가 거꾸로 돌아 폭발하는 줄 알았다. 한데 이를 단지 ‘정신 나간 꼰대의 헛소리’라고 열만 받고 끝내긴 힘들었다. 군 내 성범죄의 근저에 깔린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어서다.
군 내 성범죄의 특징은 주로 ‘잘나가는 군 엘리트’들이 부하 여군을 대상으로 저지르는데, 발각되면 ‘합의하에…’라며 반발한다. 반성도 성찰도 없다. 이는 일부 군 엘리트들 사이에 송 의원과 똑같은 ‘남근우월주의’라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부하 여성을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가볍게 인식하거나 상대 여성이 자기처럼 근사한 남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착각에서 사고를 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회에서도 소위 ‘잘나가는’ 일부 남성들의 착각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간혹 성공한 중년들이 ‘멋진 남성 코스프레’를 해대는 광경을 보게 된다. 난처하고 어처구니없지만, 그렇다고 상징적 행동에 ‘주제 파악하시라’고 콕 짚어 말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성적 매력에 있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제는 거짓이다.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듯 여성도 마찬가지다. 나이 50 줄인 내 눈에도 중년 남성은 매력이 없다. 사회적 지위가 성적 매력을 상승시킬 거라고? 착각이다. 그러니 젊은 여성들이 삼촌·아빠뻘 남성에게 무슨 매력을 느끼겠는가. 젊은 부하에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려고 시도하는 것부터가 폭력이다. 세월 앞에 겸손해지는 게 성숙한 태도다. 문제의 47세 여단장은 로맨스를 꿈꾸기에 앞서 이런 인간에 대한 성찰부터 했어야 한다.
문제는 군 엘리트들의 문화다. 그 뿌리 깊은 남근우월주의가 성찰을 방해하고, 사고방식과 행동을 바꾸는 걸 어렵게 할 수 있다. 스스로 성찰해 행동을 바꾸도록 하기엔 시간이 없다. 생각은 행동과 습관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생각을 바꿀 수도 있을 거란 기대에서 내외수칙에 찬성한다. 물론 이 수칙이 영원히 계속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를 통해 남녀 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성적 행동에서 조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남녀 간 신체 접촉은 가족·애인끼리나 하는 거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