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충돌
상식이 통하는 사회
참으로 보기 힘든 듯
정치와 상식 모두에서
대구 단색으로 바라봐
변해야 역동할 수 있어
상식이 충돌한다.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식이 통하는 사회란 건 참으로 보기 힘든 듯하다.
대구시민으로서 대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대구 관련 상식을 보자. 대구의 옛 이름인 달구벌은 ‘닭의 평야’란 뜻이다. 그래서 치킨사업이 유별나게 강한 것일까. 반월당은 민족자본으로 지은 백화점 이름이다. 두보 시인 후손 두사충은 대구 계산성당 인근에 살며 뽕잎을 따다 이웃집 여인에게 반하고 만다. 마침내 뜻을 이루자 ‘님도 보고 뽕도 따고’란 말이 나왔다. 3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조봉암에게 압도적으로 이겼지만 10대 도시 중 대구에서만 조봉암 72.3%, 이승만 27.7%로 나타났다. 진보당의 조봉암이 이승만을 3배 가까이 이긴 것이다. 네가지를 다 맞추었다면 일단 대구 시민의 자격은 있다.
지구가 시속 10만8천㎞로 공전하고 있다는 건 지금은 상식이지만 갈릴레이와 브루노가 살던 시대엔 창조적인 천재들이 오답을 가진 다수의 상식인들에게 무참하게 폭행과 죽음까지 당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다. 1776년 미국에선 토마스 페인의 ‘상식’이란 책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국이 술렁거리게 된다. 미국은 영국왕 조지 3세의 식민지로 사는 것이 상식이라 믿었는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미국은 독립국이 되는 것이 ‘상식’이라 주장한다. 지금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시로는 파괴적이고 무서운 말이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도 1770년대 초까진 미국의 독립을 반대했다. 혁명적인 주장을 담은 글의 제목을 ‘상식’이라고 지은 토마스 페인의 재치가 돋보인다. ‘상식’이란 말이 주는 보편적인 안정감으로 대발상의 전환을 선동하면서 영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1938년 이병철이 삼성상회를 대구에 설립한 이유는 단 한가지다. 당시 전국 3대 시장이 대구장, 경성장, 평양장이었다. 이 중 대구장이 물동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도시의 중심은 대구, 경성, 평양이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지리는 경부선 벨트를 중심으로 발전했고, 1960년대 이후에도 대구는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인 섬유산업의 메카였다. 도시는 팽창했고 인재가 모이며 거리는 활기가 넘쳐났다.
그랬던 대구가 언젠가부터 침체돼갔다. 생산력은 낮고 소비만 높은 도시,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보수가 아니라 안락함과 그대로를 추구하는 끼리끼리의 보수적 도시. 외지에서 온 친구들은 대구 곳곳에 붙어 있는 ‘COLORFUL DAEGU’를 보고 황당한 얼굴로 말한다. “대구가 단색이지 무슨 컬러가 풀하냐?” 정치적으로 단색이란 걸 비웃는 줄 알았지만 정치를 넘어 상식적으로도 단색이란다. 여기까지가 현재 외부에서 보는 대구란 단어를 판단하는 상식이다. 두 눈 가진 원숭이가 한 눈 가진 원숭이 세계에 살려면 자기의 눈을 하나 찔러야 한다.
1960~70년대 대구는 힘이 넘치는 도시였다. 최고의 사회과학도시이자 각지에서 모인 지식인들이 넘치는 사상적 담론의 수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선택이 하나로 몰리면서 경제도 변화하지 못하고 침체의 늪으로 빠졌다. 별난 상식도 자기 눈을 찌르지 않고 살 수 있는 대구가 되어야 살아 있는 도시가 된다. 시민이 별나고 변해야 대구가 역동할 수 있다.
내 생각에 반발하고, 복잡성을 바라보아야 한다. 충돌은 합리성을 찾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관점에 정답이 없듯, 상식에도 정답이 없다. 정답은 언제나 휘어져 있다. 결국 상식이란 지금 시대에 맞는 논리와 발전적인 '앎’을 습득해 가치관을 공유해 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표병관의 야유 영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