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생각의 사이

구름뜰 2015. 2. 27. 09:27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김광규(1941∼ )

 

 현대사회에서는 스페셜리스트, 한 가지 분야를 깊이 아는 사람이 대접받는다. 자기가 아는 분야 바깥의 다른 일은 전혀 몰라도 잘살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일의 ‘전문가’가 되려고 전력투구한다. 그러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까? 어떤 직업을 가졌건, 상황이 어떻건, 모든 사람이 제 분야만 생각하고 다른 분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세계를 상상해 보라. 스페셜리스트가 넘쳐나면 세상은 엉망이 될 테다. ‘오타쿠’의 세계에서는 군사 문제에만 빠삭한 사람, 정치에만 빠삭한 사람, 역사에만 빠삭한 사람을 ‘밀덕’ ‘정덕’ ‘역덕’이라 한다지. 뭐, 나는 ‘오타쿠’를 싫어하지 않지만, 세상이 ‘덕’, ‘오타쿠’들로만 구성된다면 그 세상은 얼마나 황폐할 것인가. ‘휴지와/권력과/돈과/착취와/형무소와/폐허와/공해와/농약과/억압과/통계가//남을 뿐’일 테다. 왜냐고? 제가끔 자기 전문의 벽을 쌓고 들어앉아 있는 사회, 특정 분야의 지식(정보)들이 커다란 벽으로 막혀 있는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도 안 되고 타인을 이해할 수도 없을 테니까!

옛날 사람들은 어떤 일을 깊이 알지 못해도 세상일을 두루 알았다. 그처럼 제 세계에만 갇혀 있지 않고 열린 사람, 여러 분야를 두루 알면서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 생각이 치우치지 않은 사람, 요컨대 ‘사이’의 사람이 도태된 사회를 시인은 조곤조곤 담담히 비판한다. 쉽게 읽히면서 숨은 뜻이 씹히는 시다.

-황인숙 시인

 

** '오타쿠'는 의미와 정의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의미를 두자면 혼자만의 세계(한 분야에 심취한 사람)에 빠져 있는 경우를 일컫는 지칭(심하게는 은둔형 외톨이도 포함)이다. 오타쿠라는 말이 일반화 된것은 1983년 일본의 칼럼니스트 '나카모리 아키오' '오타쿠의 연구'라는 만화를 연재하면서 생겨난 단어로 알고 있다. 오타쿠족,,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취미나 일 일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로 인해 그 이외의 광범위한 지식이나 사회성 사교성은 결여되어 있는 인물을 일컫는 말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의외로 이런 '오타쿠'가 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충실해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감정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아니 함께 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관계도 '타이밍'이다. 말이나 언어 문자 행위까지 소통이 잘 될려면 호흡처럼 음악처럼 리듬 즉 박자가 맞아야 한다. 즉 기다리지 않아도 될 타이밍을 주고 받은 것은 서로에게 매우 활력이 된다.

 

그런데 무얼 함께 하려 해도 타이밍을 못 맞추는 사람이 있다. 감정에도 물리적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관계에서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을 주는 사람,  타이밍을 놓치는 사람, 내 탓인가 싶다가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 괜찮은데 역시나 그사람만 만나면 내가 심리적으로 박자를 못맞추는 바람에 기다리게만 만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기를 소진시키는 사람이다. 만나면 활력이 생기는 엔돌핀 같은 사람도 있는데, 타이밍 안맞는 사람과 자주 시간을 가질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